- ‘한국축구 감독’ 독이 든 성배 잡을 자, 국내파냐 해외파냐
- 출처:시사저널|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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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위태롭던 행보가 1년 만에 경질 엔딩을 맞으면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은 다시 혼돈에 빠졌다. 3월 A매치 기간에 치른 월드컵 2차 예선 일정을 임시 사령탑 체제로 강행했다. 황선홍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 자신의 본업을 뒤로한 채 A대표팀을 맡았고, 서울과 방콕에서 열린 태국과의 2연전에서 1승1무를 기록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식 감독 선임이다. 황선홍 감독의 헌신 덕에 번 시간을 제대로 된 인물을 데려오는 데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감독 선임을 결정하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는 3월 A매치 직후 다시 움직였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4월2일 브리핑을 통해 "그간 취합된 후보 32명 중 오늘 회의를 통해 11명을 후보 선상에 올리기로 했다. 국내 지도자 4명, 해외 지도자 7명이다"고 밝혔다. 오는 6월 다시 A대표팀이 소집되는 만큼 5월초까지 정식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정해성 위원장의 발표대로라면 신임 A대표팀 감독의 데뷔전은 싱가포르(원정), 중국(홈)을 상대하는 6월 A매치가 될 예정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우선 해외 지도자들에 대한 면담을 비대면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후 국내 지도자들과 면담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6월 일정에 혼돈이 없도록 감독을 선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적 분위기" 강조…국내 감독 선임?
후보군의 면면을 밝히진 않았지만 국내 지도자 4명은 확인된 분위기다. 홍명보 울산HD 감독, 김기동 FC서울 감독, 이정효 광주FC 감독, 그리고 황선홍 감독이 이름을 올린 상태다. 지난 시즌 기준 K리그1 최고의 지도자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된 지도자로 후보가 구성됐다는 점에서 최상의 선택을 고심 중인 분위기다.
홍명보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이미 A대표팀 사령탑을 경험한 바 있다. 2017년부터 3년 동안은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핵심 행정 업무까지 소화했다. 이후 현장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며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취임 2년 차인 2022년 K리그1 우승에 성공했고 지난 시즌 2년 연속 제패 위업까지 달성했다.
홍명보 감독의 최대 강점은 카리스마와 섬세함을 두루 활용한 팀 관리다. 울산에 위닝 멘털리티를 심었고, 선수별 MBTI 분석을 통한 접근으로 안정적인 팀 운영 능력을 증명했다. 역대 최고의 대표팀 선수로 평가받는 만큼 최근 잦은 분란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A대표팀 분위기를 다잡을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김기동·이정효 감독은 한국 축구 헤게모니를 깬 지도자들이다.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 착실히 스텝업을 했고, 감독 데뷔 후 곧바로 성과를 내며 판을 흔들었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를 이끌고 2021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3년 FA컵(현 코리아컵) 우승에 성공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말 국내 스포츠 지도자 중 최고 연봉(11억원 추정)을 받고 서울 사령탑에 올랐다. 이정효 감독은 2022년 강등된 광주를 1년 만에 K리그2 우승을 통한 다이렉트 승격으로 이끌었다. 지난해엔 K리그1 최저 팀 연봉에도 광주를 3위로 이끄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최근 A대표팀 선수 다수가 유럽에서 활약하며 감독이 훈련 단계부터 전술적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그 부분을 충족시킨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명성에 비해 실속이 없었다. 국내 지도자 중에서는 김기동·이정효 두 감독이 전술적 트렌드와 견고함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점에서 대한축구협회도 유력 후보로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황선홍 감독은 이미 클럽팀 감독으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미션도 달성했다. 3월 A매치 기간에는 준수한 리더십을 발휘해 손흥민-이강인 내분 사태 여파를 봉합했다. 짧은 준비기간으로 인해 홈에서 태국에 일격을 맞았지만 원정에서 완승을 거두는 모습도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위험도 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자리
정해성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한국적인 분위기에 대해 준비가 돼있는지를 분명히 파악해서 선택하겠다"는 기준을 더했는데, 이 기준이 논란이 됐다. 국내 지도자에 큰 비중을 둔 발언이 아니냐는 것. 벤투·클린스만으로 이어지는 외국인 지도자 체제에서 대표팀 운영에 지나친 자율을 부여한 것이 방임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은 있었다. 여기에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 클린스만 감독 위약금 등으로 인해 재정 부담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은 국내 지도자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지도자 중 일부는 인터뷰를 통해 자원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튀르키예를 3위에 올려놓은 세놀 귀네슈 감독이 대표적이다. 과거 FC서울 감독을 맡아 K리그도 경험했던 그는 최근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3년 더 지도자 생활을 하려고 한다. 마지막 불꽃을 한국을 위해 태우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귀네슈 감독은 2013년에도 한국 A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끌고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며 세계를 놀라게 한 프랑스 출신의 에르베 르나르 감독도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르나르 감독은 모로코를 이끌었던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좋은 지도력을 보여 벤투 감독 선임 이전에 우선 접촉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엔 위약금 문제로 불발됐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사임한 르나르 감독은 파리올림픽까지 프랑스 여자대표팀을 이끌기로 돼있다. 그 역시 최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에 맡고 싶은 최우선 순위의 팀은 한국이다"고 말했다.
그 밖에 레알 마드리드, 세비야, 울버햄튼을 이끈 훌렌 로페테기 감독, PSV 에인트호번을 이끌며 성과를 낸 거스 히딩크 감독의 애제자 필립 코쿠 감독 등도 하마평에 올랐다. 최근까지 유럽 축구의 중심에서 성과를 내다가 실패를 겪으며 무직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A대표팀 사령탑이 ‘독이 든 성배‘로 불릴 만큼 위험도는 있지만 손흥민·김민재·이강인·황희찬 등 황금세대를 이끌고 차기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면 다시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유명 외국인 감독들의 한국행에 매력으로 작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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