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 왜 갔슈?" 13년 전 홀대 받고 한화 떠났는데…우승, 은퇴식 그리고 감독까지 '인생만사 새옹지마'
- 출처:OSEN|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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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2011년 4월5일 KIA 선수로 대전구장을 방문한 이범호(43)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구단 버스에서 내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한화 팬으로부터 “왜 갔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이범호는 “내가 10년간 뛴 곳이고, 정이 많이 든 곳이다. 한화에서 보낸 10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내게 의미가 있다. 한 팬분께서 ‘왜 갔슈’라고 하는데 마음이 찡했다. 그 말을 들으니 대전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며 “팬들의 반응이 조금 걱정되지만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이범호는 2009년까지 대전이 홈이었다. 한화가 키운 선수였다. 유격수로 시작해 2004년부터 주전 3루수로 자리잡아 중심타자로 성장했다. 한화에서 10년간 1129경기를 뛰며 타율 2할6푼5리(3465타수 917안타) 160홈런 526타점 OSP .821을 기록했다. 찬스에 유독 강한 결정력으로 김태균과 함께 한화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이끌었다. 2005~2006년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두 번 받았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활약을 발판 삼아 이범호는 2010년 일본으로 진출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 최대 5억엔 계약했지만 첫 해부터 부상과 부진으로 1군보다 2군에 오래 머물렀다. 2011년에도 전력 외로 분류됐다. 자연스레 국내 복귀설이 흘러나왔다. FA로 일본에 나갔지만 이범호에게 1순위는 친정팀 한화였다.
때마침 주전 3루수 송광민이 2010년 시즌 중 군입대한 한화는 3루 자리가 비어있었다. 당시 한화를 이끌던 한대화 감독이 구단에 이범호 복귀를 수차례 요청하면서 간절하게 바랐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소프트뱅크가 한화에 협상권을 넘겼고, 10번이나 만났지만 끝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 시절 한화는 투자에 무척 인색한 ‘짠돌이’ 구단이었고, 이범호에게도 미온적이었다.
그렇게 친정 복귀가 불발되면서 일본에 어쩔 수 없이 잔류하려던 찰나, KIA 쪽에서 오퍼가 왔다. 10년 몸담았던 친정팀 한화에선 외면을 받았지만 KIA는 적극적으로 이범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해 1월27일 계약금 8억원, 연봉 4억원 등 총액 12억원에 KIA와 전격 계약을 맺었다. 해외파 선수가 국내 복귀시 원소속팀이 아닌 타팀으로 이적한 최초의 사례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그때 한화가 이범호를 외면한 것이 그의 야구 인생에는 ‘신의 한 수’가 됐다. KIA에 새둥지를 튼 이범호는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시작은 외부인이었지만 어느새 KIA에 없어선 안 될 핵심이 됐다. 탁월한 기량뿐만 아니라 고참으로서 모범이 되는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선수단과 구단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2015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KIA와 4년 36억원에 재계약했고, 2017년에는 KIA의 통합 우승을 견인했다.
KIA에서 9년간 881경기를 출장해 타율 2할7푼9리(2905타수 810안타) 169홈런 601타점 OPS .878로 성적을 남겼다. 30대가 된 이후이지만 20대 한화 시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다. 무엇보다 KIA에서 통합 우승이라는 결실과 함께 두 번이나 주장을 역임하며 리더십을 인정받았고, 2019년 성대한 은퇴식 속에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KIA에서 데뷔하지 않았지만 은퇴식을 가진 구단 최초의 선수로 예우를 받았다.
은퇴 후 이범호는 2019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이어 2020년 미국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메이저리그 연수는 스프링캠프 기간만 짧게 다녀왔지만 구단 차원에서 ‘지도자 이범호’ 키우기가 시작됐다. 귀국 후 스카우트를 거쳐 2021년에는 2군 총괄코치로 깜짝 선임됐다. 은퇴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2군 감독 대우로 현장 지휘를 했다. 이어 2022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타자 지도에 전념했다. KIA는 2년 연속 타격 지표 상위권에 올랐고, 이 코치의 지도력도 높게 평가됐다. 선수들과 원활한 소통까지, KBO리그를 대표하는 젊고 유능한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별의 순간’이 왔다. 김종국 전 감독이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KIA 구단이 발칵 뒤집어졌다. 김 전 감독은 지난달 28일 경질됐고, KIA는 수장 없이 캠프를 떠났다. 2월에 새 감독 선임이라는 지금껏 전례가 없는 작업에 들어간 KIA는 내부 코치들과 외부 감독 출신 야인들이 후보로 올랐다. 내부 승격이라면 이 코치가 1순위였고, 지난 10일 화상으로 감독 인터뷰를 한 뒤 12일 최종 확정됐다. 외부 후보와 면접을 따로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코치의 구단 및 선수단 내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비전 제시가 명확했다. 선수 시절부터 인정받은 조리 있는 말솜씨와 내공이 빛을 발했다.



13일 오전 KIA는 ‘이범호 감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 2년으로 계약금과 연봉 3억원씩, 총액 9억원의 조건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꽃을 피웠지만 광주에 와서 뿌리를 내렸다. 가족과 함께 광주로 이사하며 팀에 애정을 보였고,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으며 감독 자리까지 올랐다. 올해로 KIA에서 14년째, 선수와 지도자를 거치며 그만큼 내부 평가가 좋았다. KBO리그 최초로 1980년대생(1981년생) 감독 시대를 열며 이범호 시대를 알렸다.
이 감독은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감독 자리를 맡게 돼 걱정도 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차근차근 팀을 꾸려나가도록 하겠다.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야구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지도자가 돠겠다”며 “구단과 팬이 내게 기대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초보 감독이 아닌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맡겨진 임기 내에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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