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일뿐' 현실의 폭력은 상상보다 끔찍하다[노경열의 알쓸호이]
출처:스포츠서울|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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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명 웹툰 작가가 당한 강도상해 사건이 세간에 알려져 충격을 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도 공포스러운데, 사건 당시 범인은 등산용 나이프로 작가를 위협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내의 신고로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했고 범인은 곧 체포됐다.

당시 작가는 범인의 칼에 손을 베이는 등 전치 2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작가는 “어딘가 찔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손으로 칼을 움켜잡았고 피가 흐르자 범인도 당황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는데, 이 말은 들은 필자는 ‘그 작가가 엄청난 용기를 가진 분이고, 동시에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이거 배우면 상대가 칼을 휘둘러도 막고 제압할 수 있나요?”

무술을 지도하다 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일반인이 무술을 접하는 경로 중 가장 많은 건 뭘까? 바로 영화나 드라마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키는데 사용하는 기술, 그리고 굳이 액션영화가 아니더라도 이야기 흐름에 따라 등장하는 싸움 장면에서 사용하는 기술. 이것이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무술이다.

그래서 무술을 배우면 자신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다. 조금 더 기대가 커지면 맨손으로 칼을 쥔 상대를 제압할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나라는 총기소지가 불법이라 현실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최근 맨손으로 상대의 총을 빼앗고 쓰러뜨리는 영화 장면들이 많아지다보니 ‘그 방법을 알려달라’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상대의 흉기에 복부를 찔렸는데 그걸 그대로 쥐고 상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은 영화에만 나올 수 있다. 쉽게 생각해보자. 걷다가 책상 모서리 같은 곳에 옆구리를 강하게 부딪혔다. 속을 울리는 그 고통 때문에 옆구리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온 몸의 근육이 수축되며 몸이 구부러진다.

그 상태에서 주먹을 강하게 뻗을 수 있을까? 주먹을 상대에게 강하게 휘두르기 위해서는 투수가 공을 던지듯 일단 몸이 펴졌다가 상대를 향해 구부러져야 한다. 그런데 고통 때문에 근육이 수축되면 애초에 몸을 펴는 동작 자체가 어렵게 된다. 운동역학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액션’인 것이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도 이 정도인데 상대의 흉기가 내 몸을 찔렀다면? 베여도 마찬가지다. 종이에 살짝 베여도 그 고통은 움직임에 여러 불편함을 준다. 그런데 흉기에 베였다? 급소가 아니더라도 당장 해야할 것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출혈을 막는 것이다.

이런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고 맞설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게 아니다. 나 혼자라면 도망갈 수도 있지만 반드시 맞서야 하는 상황, 즉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상황이 그런 용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한가지. 상대의 의도 또한 중요하다. 그저 위협만 할 작정으로 흉기를 들이댄 것이라면 기술을 걸어 상황을 역전시킬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가 작정하고 나에게 상해를 입힐 생각으로 흉기를 준비했다면? 그런 상황에선 ‘고수’로 인정받는 무술 수련자도 맨손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더구나 상대가 한 명이 아닐 수 있다.

“요즘은 영화 액션도 실제처럼 리얼하게 만든다고 하던데요?”라는 질문도 있었다. 아무리 실제처럼 리얼하게 만든다고 해도 액션은 기술과 타이밍이 정확하게 짜여진 연기일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실제 싸움처럼 연출한다 해도 거기엔 ‘고통에 의한 인체의 정확한 반응’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호신술이나 무술을 익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다.

 

 

“드루와, 드루와”라는 대사로 유명한 한 영화의 엘리베이터 액션씬을 보고 사람들은 “실제처럼 잔인하다. 살벌하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훨씬 더 잔인했을 것이고, 영화와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여전히 궁금했던 분의 질문.

“그럼 총을 뺏는 것도 실제로는 완전히 불가능한 기술인가요?”

불가능하진 않다. 단, 총을 든 상대가 아무런 대비 없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내 머리 높이에 총을 겨눠야 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상대의 손가락 속도보다 내 손 속도가 더 빠르면 가능하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운이 엄청나게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기술을 배우고 연습해놓으면 나쁠 건 없지만, 이것도 한 번 생각해보자. 영화에 그런 기술이 자꾸 나오며 유명해진 이상, 총을 든 괴한도 당신 코 앞까지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총은 멀리서 쏘도록 만들어진 무기니까.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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