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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과의 동행, 토할 뻔 했다
출처:스포츠서울|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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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이었다. 이승엽이 내게 함께 훈련하자고 했다. 나는 시즌후 삼성에서 방출되었고 개인훈련 중이었다. SK 이적을 앞두고 있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역대 훈련중에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다. 토 나올 정도였다. 운동하면서 헛구역질을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도 웨이트트레이닝엔 자신 있었는데, 이승엽과의 동반훈련은 상식의 틀을 깼다. 무게와 횟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훈련에서 빠지고 싶었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승엽에게 “1박 2일로 서울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다. 후배 결혼식이 있었다. 이승엽은 내게 “형,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지금 결혼식 가서 축하해 주는거 보단 형 인생이 더 중요하다. 형이 잘 되고 나중에 잘 챙겨주면 된다. 그러면 결혼식 못갔다고 욕하지 않을거다. 눈앞이 중요한데 이틀이나 빠지면 안된다”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이승엽이 최고 타자가 됐는지 제대로 느꼈다.



이승엽은 2004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는데,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고 타율 0.240에 14홈런을 기록했다. 기대에 못미친 저조한 성적이었다. 그리고 시즌후 이승엽은 나와 함께 겨울 한달간 엄청난 훈련을 소화했다. 명예회복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한달내내 훈련만 했다. 그리고 찾아온 2005년. 라이언킹은 일본에서 30홈런을 치며 부활했다. 이듬해인 2006년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41홈런을 때려냈다.

오래전에 나는 이승엽과 친해진 계기가 있다. 극과 극의 만남이었다. 나는 1994년 신고선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1995년 고졸신인 최고대우를 받으며 삼성에 입단했다. 최고와 바닥, 우리의 처지는 1995년에 매우 달랐다.

당시 나는 생존을 위해 쉴 틈이 없었다. 누구보다 빨리 야간훈련을 시작했다. 오전오후 훈련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곧장 방망이를 잡았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훈련장에 나 외에 한명 더 있었다. 프로 1년차 약관의 이승엽이었다.

“어, 승엽아 일찍 나왔네~”
“네, 형도 계셨어요?”

우리는 8시 야간훈련이면 1시간은 먼저 나왔다. 둘 밖에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때부터 이승엽을 오랜 기간 지켜보며 느낀게 있다. 그는 1등에 대한 집념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정상에 오를때 까지의 자제력도 엄청났다. 때론 그런 단호함이 자기 중심적으로 보였다. 결혼식에 참석하려는 나를 붙잡을 때처럼 말이다. 내가 단지 고집이 센 스타일이라면 이승엽은 자기 주관이 가장 뚜렷한 후배였다.

그런 후배가 이제 두산 사령탑으로 간다. 나는 삼성이 아닌 두산 지휘봉을 잡는 이승엽을 이해한다. 우리는 팀이 선택하는 존재다. 1995년의 삼성이 이승엽을 선택했고 2022년의 두산이 이승엽을 선택한 것이다. 만약 삼성이 이승엽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면 그는 두산에 가지 않았을거다.



두산 지휘봉을 잡게 된 이승엽은 취임식에서 “앞으로 3년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겠다”고 호언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이승엽은 1등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나이다. 지금껏 목표를 정하면 흔들림이 없었다. 이번에도 정상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외부에 드러난 이승엽의 인상은 부드럽고 유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의 속은 악착같다. 외유내강으로만 설명하기 힘든 독기가 있다. 대한민국 ‘1등’ 국민타자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은 감독으로도 타이틀을 향해 뚝심있게 갈 것이 틀림없다.

물론 지도자로서의 경험 부족은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승엽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나는 아직도 ‘악바리’ 이승엽과 함께 한 2004년 겨울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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