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 천재’ 안세영 “항저우 금메달 세리머니 궁금하시죠”
출처:중앙일보|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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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되뇌며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독하게 훈련했는데… 진짜 그런 나무가 있더라고요. 도와주신 분들께 죄송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약이 된 것 같아요.”

배드민턴대표팀은 오늘(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막하는 2022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출국을 앞둔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에서 만난 여자 간판 안세영(20·삼성생명·세계랭킹 4위)은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다크호스로 주목 받았지만, 아쉽게 8강에서 멈춰 섰다.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당시 4전 전패) ‘천적’ 천위페이(24·중국·랭킹 2위)의 벽을 넘지 못했다. 패배 직후 안세영은 코트 바닥에 쓰러진 채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안세영은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며 매일 독하게 훈련했다. 3년 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면서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최선을 다 했기에 미련이 없다.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할지 깨달은 건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안세영은 ‘셔틀콕 여제’ 방수현(50·은퇴)이 공인한 여자 단식 후계자다. 15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연파하며 국내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 10일 순천에서 막을 내린 코리아오픈(수퍼 500 등급)에서 우승하며 모든 등급(수퍼 100·300·750·1000)의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드민턴 트리플 크라운(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 석권)’ 도전을 위한 전 단계를 훌륭히 마무리했다.

DNA부터 남다르다. 복싱 선수 출신 아버지에게 힘과 근성을, 체조 선수 출신 어머니에게 유연성과 침착성을 물려받았다. 체력과 수비력, 코트 커버 범위는 일찌감치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았다. 배드민턴 관계자들이 “타고났다”고 입을 모으는 부분이다. 정작 선수 자신은 시큰둥했다. “유전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라고 되물으며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안세영이 믿는 건 오직 땀방울뿐이다. 소속팀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렇게 독한 선수는 처음 봤다. 팀 훈련 이외에도 틈만 나면 코트에 나와 개인 운동을 한다. 코칭스태프가 부상을 걱정해 ‘훈련 그만하라’고 뜯어 말릴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체 근력과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체육관 한쪽 구석에 모래판 코트를 만들어놓고 훈련한 일화도 유명하다.

 

 

운동에 열중하고 싶어 이렇다 할 취미도 만들지 않았다. 팬들과 소통을 위해 SNS 계정(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정도다. 어엿한 20대 청년이지만, 온통 배드민턴만 생각하며 살다보니 또래의 관심사도, 세상 물정도 잘 모른다. 안세영은 “도쿄올림픽을 마친 뒤 어른이 된 기념으로 처음 술을 마셔봤다”면서 “맥주와 소주를 다 마셔봤는데, ‘취한다’는 느낌이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았다”고 했다.

매력 포인트는 개성 만점 세리머니다. 평소 조용하고 낯을 가리지만, 경기 중엔 확 달라진다. 승부처에서 점수를 따내면 숨겨둔 흥이 폭발한다. 목청껏 환호성을 지르고,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태극마크 또는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가끔 신바람 댄스를 선보일 때도 있다. 팬들은 그를 ‘세리머니 재벌’이라 부르며 환호한다.

 

 

안세영은 “코트에선 경기 내내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심리적으로도 상대에 밀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세리머니 동작과 소리를 크고 활기차게 한다”면서 “요즘은 좋아해주시는 팬들을 살짝 의식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세리머니 재벌로 이름을 알렸으니 앞으로는 우승을 많이 해 금메달 재벌이 되고 싶다”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재미있는 세리머니 많이 보여드리다보면 우승에 다가가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출전한 세계 최고 권위의 전영오픈은 한층 진화한 안세영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코로나19에 감염돼 컨디션 저하로 준우승(경기 후 통보 받음)했지만, 4강에서 세계랭킹 1위 타이쯔잉(28·대만)을 잡았다. 한국 여자 단식 선수로는 방수현(1996년 우승)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안세영은 “결승전을 치를 땐 아픈 줄도 몰랐는데, 대회를 마친 뒤 영국 현지에서 격리돼 며칠 간 끙끙 앓았다”면서 “눈 앞에 다가온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 탓에 몸만큼이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항저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려면 ‘천적’ 천위페이를 넘어야 한다. 도쿄올림픽 8강전을 포함해 상대전적은 6전 전패로 벌어졌다. 안세영은 “천위페이는 공격적이면서 끈끈한 스타일”이라면서 “상대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타입이다보니 맞대결할 때마다 내가 더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천위페이의 안방에서 열리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만리장성을 뛰어넘고 멋진 세리머니를 선보이면 더 근사할 것 같지 않느냐”며 미소지었다.

 

 

◇안세영은…

출생 : 2002년 2월5일 광주광역시
체격 : 1m70㎝·54㎏
소속팀 : 삼성생명
주종목 : 여자단식
출신교 : 풍암초-광주체중-광주체고
세계랭킹 : 4위
별명 : 깜디(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동료들이 붙여줌)
주요 이력 : 도쿄올림픽 8강, 인도네시아 마스터즈(수퍼 750) 우승, 인도네시아 오픈(수퍼 1000) 우승, 월드 투어 파이널 우승(이상 2021년), 전영오픈 준우승(수퍼 1000), 코리아 오픈(수퍼 500)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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