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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베로 감독이 불러온 야구문화 논쟁, 정답은 하나
- 출처:오마이뉴스|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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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NC전 나성범 스윙에 항의... 윌리엄스 감독 사례 참고해야
KBO리그 데뷔 첫 해를 보내고 있는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은 최근 잇달아 ‘야구문화 논쟁‘에 휩싸이며 화제가 됐다. 불과 열흘 사이에 두 번이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화의 팀 성적(5승 8패, 9위)보다 수베로 감독 개인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렸을 정도다.
지난 17일 창원NC파크에서 벌어진 한화-NC전. 4-14로 한화가 10점 이상 뒤진 상황에서 수베로 감독은 전문투수가 아닌 야수 정진호를 마운드에 올렸다. 지난 10일 두산전에서도 수베로 감독은 1-14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마지막 9회초에 야수인 강경학과 정진호를 잇달아 마운드에 올려 이닝을 마무리한 바 있다. 이미 패색이 짙어졌으니 다음 경기에 대비해 불펜 투수력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긴 포석이었다.
정진호는 NC 나성범을 상대로 제구가 아직 잡히지 않았는지 첫 3개 연속 볼을 기록했다. 4구째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고, 나성범은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파울이 됐다. 그런데 타격 직후 수베로 감독이 덕아웃에서 돌연 NC측을 향하여 손가락 3개를 펴며 화를 냈다. 수베로 감독은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이에 NC 이동욱 감독도 수베로 감독의 항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수베로 감독의 항의는 ‘불문율‘ 논란을 불러왔다. 크게 점수차가 벌어진 스리볼 상황에서 타자가 적극적으로 스윙하는 것은 북미권 야구문화에서는 일종의 금기에 해당한다. 야수를 투수로 등판시켰다는 것만 해도 이미 상대가 반쯤 백기를 들었다는 메시지와 같은데 여기에 크게 리드하고 있는 팀이 스리볼 타격을 한다는 건 상대를 무시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농구나 축구에도 점수차가 벌어지며 승리가 확정적인 팀이 굳이 추가골을 넣으려 하지 않고 자제하는 관행이 있다. 야구에는 이밖에도 큰 점수 차에 도루를 시도하면 안 되거나 상대 투수가 노히트노런을 기록 중인데 번트를 대면 안 된다는 등의 불문율도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러한 불문율을 깨고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스리볼 타격으로 안타나 점수를 내게 되면 후속 타자들에게 보복성 위협구를 던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
수베로 감독은 베네수엘라 출신이며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자라고 배운 그가 스리볼 타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지금 감독을 맡고 있는 팀은 한국에 있다. 불문율은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 정식 규정도 법도 아니다. 그리고 불문율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른바 ‘빠던(빠따 던지기)‘이라는 속어로 더 유명한 배트플립이 대표적이다. 배트플립은 타자가 타구를 치고 배트를 던지는 행위다. 미국에선 곧바로 투수의 빈볼을 부르는 도발 행위로 간주되지만, 한국에서는 타자들에게 보편적인 세레머니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KBO리그가 해외에 중계되면서 현지에서도 국내 타자들의 다양한 배트플립이 큰 화제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최근 들어 메이저리그에서도 개성이 강하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과감히 배트플립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 수베로 감독은 야수의 투수기용이라는 문제로 ‘한미 야구문화의 차이‘를 체감한 바 있다. 수베로 감독이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야수를 투수로 기용했던 장면을 놓고 세간의 반응이 엇갈렸다. 미국에서는 비교적 흔한 장면이라면, KBO리그에서는 불문율까지는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리 자주 나오는 장면이 아니다. 수베로 감독은 이 장면이 이슈가 된 것 자체가 오히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당시 많은 팬들과 언론은 대체로 수베로 감독의 선택이 독특하긴 했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입장료를 내고 보기 아깝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드물게 비판적인 소신을 밝혔던 안경현 해설위원의 문제제기는 일부 언론과 팬들로부터 과도한 폄하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스리볼 타격 논란에서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많은 이들은 수베로 감독이 감정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한국 야구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였어야한다고 지적한다.
야구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점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섣불리 한쪽의 입장만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로 판단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먼저 다름을 인정하는 차분한 소통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이다.
스리볼 타격도, 야수의 투수등판이라는 선택도 모두 규정상의 문제는 없다. 수베로 감독은 두산-NC전까지 벌써 올시즌에 두 번이나 야수의 투수등판을 시도했다. 무엇은 허용되고 무엇은 비매너라고 딱지를 붙이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불펜 투수력을 아낀다는 명분이라면, 갑작스레 준비 없이 마운드에 등판한 야수의 부상 위험이나 체력부담은 간과해도 되는 것이었을까. 애초 프로 경기에서 야수를 투수로 등판시켜야했을만큼 점수차가 두 자릿수로 벌어지는 졸전이 속출한다는 것부터가 오히려 팬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야할 상황은 아니었을까.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베로 감독에게는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을지 모르는 불문율도, 다른 누군가의 시각과 문화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경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야수를 투수로 기용하는 것은 당연히 용인되고, 점수차가 벌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유리한 스리볼 볼카운트에서도 적극적으로 타격을 시도하는 타자는 불문율에 위반된다며 화를 낸다는 것이 뭔가 모순되지 않은가? 불문율과 야구문화는 철저히 상대적인 관점일뿐, 정답은 결코 하나일 수 없는 것이다.
올해 KBO리그 2년차를 맞이하는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도 첫 해에 한국야구문화에 적응하느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바 있다. 다만 윌리엄스 감독은 자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야구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하여 경력상 선배인 류중일 전 LG 감독에게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윌리엄스 감독이 지난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호평을 받을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리그 스타 출신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새로운 한국야구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려했던 모습 때문이었다.
수베로 감독 역시 참고해야할 부분이다. 더불어 수베로 감독을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들이 그저 소모적인 찬반 논란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 더 나은 야구문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져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