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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의 설렘 사라지는 날… 기사 생활 접을 각오”
- 출처:조선일보|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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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배 첫 제패 김지석 9단
김지석(32)은 번번이 ‘바둑계 상식’을 허문다. 이번엔 서른을 넘긴 나이에 타이틀을 추가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20대 시절 8번 도전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맥심배여서 더 반향이 컸다. 2년 7개월 만의 우승 역시 유례가 드문 시간 역행(逆行)이다.
“승부사로서 제게 남은 시한은 앞으로 2~3년쯤인 것 같아요. 운이 따라줘 1~2번쯤 더 우승해 두 자릿수를 넘기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메이저급 기전서 총 9번 정상을 밟았다. “시한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승부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 9단의 ‘시한부 기사’론은 그 특유의 직업관 및 인생 설계와 관련이 있다. 2013년 GS배서 이세돌을 완파하고 우승한 직후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언젠가는 추락할 때가 올 것이다. 한 10년 뒤쯤 될까? 하지만 대국 날짜 됐다고 설렘도 없이 습관적으로 출전하는 기사는 되지 않겠다. 그런 상황이 오면 기사직을 떠나 다른 일을 찾겠다. 바둑 말고도 하고 싶은 공부가 많다.” 우승 다툼 대열에서 뒤처지면 승부사의 길을 접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기사 생활을 접는 상황’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현재 한국 랭킹 6위로, 각종 기전서 최고 등급 성적과 소득을 올리는 중이다. 세계 정상에 올랐던 2014년 못지 않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중국 갑조리그서 나를 부르지 않을 때”란 대답을 내놓았다. 2012년부터 참가한 갑조리그와는 올해도 계약을 마쳐 10년 연속 출전하게 됐다.
그의 독특한 개성은 AI(인공지능) 활용법에서도 드러난다. “AI가 제시하는 초반 수순을 달달 외워 두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하면 성적은 오를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혼자 끙끙대며 길을 찾아가던 내 스타일을 지키고 있어요.” 물론 무조건 AI를 외면하는 건 아니다. 복기할 때는 최대한 활용한다. 그는 2016년 알파고·이세돌전 때 알파고의 승리를 점쳤던 몇 안 되는 기사다.
김지석이 바둑 공부에 쏟는 시간은 하루 4~5시간 정도. 경쟁자들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는 “주변에 열심히 공부하는 기사들이 참 많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면서도 “공부량이 고스란히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재 시절의 김지석도 ‘공붓벌레’ 계열은 아니었다.
그는 요즘 색다른 세계에 흠뻑 빠져 있다. 수학과 물리학이다. “언젠가 바둑에서 한 발 멀어지면 공부하고 싶은 세계”라고 말하던 분야들이다. ‘선생님’은 전남 광주시에 거주 중인 아버지(김호성·전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매주 3회 화상(畵像)으로 연결해 배운다. “약간 어려울 때도 있지만 굉장히 재미있다”고 했다.
서른을 넘어서도 고공 행진하는 진짜 비결은 외동딸 회린(3)이 인지 모른다. 2018년 제1회 용성전서 우승하던 날 태어난 ‘복덩이’다. 인터넷 7단 실력의 외할아버지로부터 기초를 배운 딸은 벌써 둘러싸인 바둑돌을 남김없이 들어낼 줄 안다. “온라인 공부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손녀부터 찾으십니다. 회린이한테 자랑스러운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