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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정] 정정용 감독이 걱정되는 유일한 이유는...
출처:서호정 칼럼|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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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발표된 정정용 감독의 서울 이랜드 FC 사령탑 부임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표출한 감정은 기대보다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과를 낸 유망한 감독이 현재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조건의 팀으로 향한다는 걸 모두가 직관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서울 이랜드는 정정용 감독 선임을 지난 6월부터 열망했다. 당시 성적 부진으로 김현수 감독이 사임한 상황에서 구단 차원의 새로운 감독 선임이 삐걱거릴 때였다. 1차적으로 접촉한 후보로 잘 알려진 안익수 감독과의 최종 계약이 결렬되자 구단은 차선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모기업에서는 구단 차원의 감독 선임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그때부터 감독 선임은 구단 역사상 최초로 모기업, 그것도 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직접 진행했고 정정용 감독이 단일 후보였다. 서울 이랜드 창단 당시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그룹 내 최고 결정권자가 ‘고작’ 감독 선임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정용 감독을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놀라운 성과와 지도 능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과거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였다는 특별한 인연이 박성수 회장의 호감을 샀다. 이랜드 푸마 축구단은 1992년 말 창단해 1998년 2월 해체된 실업축구단이다. IMF여파로 해체할 수 밖에 없었지만 박성수 회장의 애정이 깊어서 이랜드 그룹에서는 2014년 창단한 서울 이랜드의 전신이자 그룹의 축구 투자 정당성을 채우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역사만으로 K리그2 최하위 팀에 모시기에는 U-20 월드컵 이후 정정용 감독의 인기와 가치는 급상승했다. 서울 이랜드가 새 감독으로 그를 영입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희망사항’으로 치부됐고, 실제로 정정용 감독도 안정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축구협회와의 재계약을 택했다.

그렇게 정정용 감독의 진로가 결정났나 싶었지만 지난 10월부터 다시 서울 이랜드행 가능성이 언급됐다. 이랜드 그룹의 의지가 매우 강력하고, 정정용 감독만 데려올 수 있다면 다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구단의 열의에 정정용 감독은 받아들였고, 대한축구협회도 기존 계약을 정리하며 프로 무대로 가는 것을 도왔다.

 

 

어떤 정의로든 충격적인 선임이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우려다. 2015시즌부터 K리그에 뛰어든 서울 이랜드가 창단 당시 외친 승격과 아시아 무대 진출이라는 거창한 청사진에 걸맞은 투자와 의욕을 보인 것은 단 2년뿐이었다. 최근의 실망스러운 행보를 크게 뒤집는, 기대를 불러 모으는 이름값 있는 감독을 선임했지만 그것만으로 3년 간 쌓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가장 우려되는 건 뛰어난 감독을 영입했다고 다 될 줄 아는 그룹의 인식이다. 퍼거슨 감독은 “축구에서 99%는 선수가 만든다. 지도자의 몫은 1%지만 그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게 축구다”라고 지도자를 정의한 바 있다. 감독은 축구에서 성과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지만, 그것을 위해선 경쟁력 있는 스쿼드가 깔려야 한다. 서울 이랜드가 말하는 중장기적 발전이나 리빌딩을 위해서는 정정용 감독 선임은 첫 단추 하나를 꿴 것 뿐이다.

물론 서울 이랜드가 지난 3년과 다른 행보를 정정용 감독 선임을 기점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우려를 하는 쪽은 창단 6년 차에 6대 감독을 선임한 그들의 역사가 증명한 축구단 운영의 그릇된 태도다.

 

 

창단 당시 지휘봉을 잡은 마틴 레니 감독은 2년차 전반기가 끝나기 전 경질됐다. 박건하 감독은 막바지 6연승으로 힘을 냈음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는 다음 시즌 직전 구단 권유로 사임했다. 3년 계약을 맺고 온 김병수 감독도 한 시즌만에 사임했다. 두 감독 모두 사임으로 발표된 경질이다. 김병수 감독은 이후 강원FC로 가서 서울 이랜드가 어떤 오판을 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2018시즌은 인창수 감독이 이끌었지만 성적도 존재감도 창단 후 최악이었다. 올해는 김현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5월에 물러났다. 우성용 감독대행으로 6개월을 버텨 온 팀은 이제 창단 후 여섯번째 시즌을 앞두고 6대 감독을 맞았다. 지금까지 감독들과의 계약 해지에 따른 보상 금액으로 1부 리그 특급 선수는 영입할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가 허언이 아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정정용 감독을 데려왔다면 이랜드 그룹이 해야 할 일은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까지 채워주는 것이다. 단순히 스쿼드 강화를 위한 투자나 예산 증액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이랜드라는 팀은 현실적 과제가 너무 많다. 올해는 홈구장인 잠실종합운동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천안종합운동장을 더 많이 홈으로 쓰는 기형적 운영을 해야 했다. 다음 시즌에도 잠실종합운동장은 이미 다른 행사들이 잡혀 있어 홈 경기 운영이 다시 한번 비정상적으로 진행될 상황이다. 올해 간신히 자리 잡은 사회공헌활동, 지난 2년 간 손 놓았던 팬 커뮤니케이션 활동 등도 연속성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까지 정정용 감독 선임이 다 해결할 순 없다.

 



정정용 감독은 선수를 지도하고,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역할로도 벅차다. 2부 리그는 1부 리그 이상의 처절한 생존 경쟁이 이뤄지는 무대다. 2부 리그로 떨어진 다른 기업 구단들이 다시 1부 리그로 돌아가지 못하는 중이다. 정정용 감독 선임의 가장 큰 기치로 언급한 육성은 1군팀 감독 혼자 다 할 수 없다. 시스템의 문제고, 연령별 팀에 배치된 지도자와 담당 인력도 중요하다. 그런 구축에 필요한 투자는 기본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서울 이랜드는 K리그에서 최하위권이다.

기업 구단으로서 모기업 회장이 직접 감독 선임에 관여했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내버린 자식처럼 예산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것보다는 낫다. 정정용 감독이 앞으로 모기업이 축구단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다. 왜 지난 5년간 돈을 쓰고도 불명예스러운 역사만 남기고, 가장 나쁜 이미지를 가진 구단이 됐는지 정정용 감독 선임을 계기로 이랜드 그룹이 재고해 보길 바란다. 2020시즌을 준비하는 서울 이랜드 구단을 향한 걱정은 늘 그렇듯이 감독이 아니라, 축구라는 스포츠와 프로 구단 운영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족한 이랜드 그룹이기 때문이다.

서울 이랜드 FC의 6대 사령탑 정정용 감독이 또 다시 흑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소모나 희생이 아닌, 역사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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