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는 귀가 행복했던, 두 감독의 '명품' 기자 회견
- 출처:베스트 일레븐|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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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곧 그 사람이다’란 격언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 가장 잘 묻어나는 도구며, 생각과 사상 나아가 됨됨이까지 알 수 있는 수단이다. 참으로 오랜 만에 그 사람의 훌륭한 인격을 알 수 있는, 하여 참으로 좋은 말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었던 때는 지난 12일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고, 장소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지하 1층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이었다.
하루 전인 12일 저녁,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평가전에서 우루과이를 꺾었다.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10년 넘게 이끌고 있는 우루과이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의 강호인데, 랭킹 55위인 한국이 꺾는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아울러 이 승리는 한국의 역대 우루과이전 첫 번째 승리였다. 역대 전적도 이제 1승이 생기며, 8전 1승 1무 6패가 됐다.
한국이 우루과이를 꺾은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더 대단한 일이 경기 후 공식 기자 회견에서 일어났다. 예상을 벗어난 ‘명품’ 기자 회견이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강팀이 약팀에 패하면 감독은 성토하기 마련이다. 핑계를 찾기 일쑤고, 변명을 하기 마련이다. 반면 약팀이 강팀을 잡으면 감독은 달뜬 소감을 말하기 바쁘다. 자신을 혹은 선수들을 포장하여, 미디어를 향해 우쭐거린다. 당연한 현상이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일이나, 강팀이 약팀에 패하는 일 모두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우루과이전이 끝난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들이 나왔다. 포문은 타바레스 우루과이 감독이 열었다. 타바레스 감독은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첫 번째로 한국에 패한 감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사다움을 잃지 않았다. 노장의 품격을 넘어서는 분위기가 풍겼다.
타바레스 감독은 한국에 대해 평가할 때, “한국과 경기는 라이벌전이었다”라는 표현을 썼다. 사실 한국과 우루과이가 라이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타바레스 감독은 그런 표현을 하면서까지 한국을 높이 평가했다. 또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과 비교해 전력이 격상된 부분을 짚었고, 톱클래스 레벨로 성장한 손흥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약팀에 패한 강팀 수장의 인터뷰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투와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1947년생인 타바레스 감독은 고희(70세)를 넘긴 고령에다 목발에 의지해야 할 만큼 몸도 성치 않지만, 또렷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기자 회견에 임했고, 낯선 한국 기자들의 낯선 질문에도 최대한 성실히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질문이 다소 모호하면 되물으면서까지 정확한 답변을 하려 노력했다. 그런 타바레스 감독의 품격 있는 인터뷰를 보며, 존경심이 일 정도였다.
타바레스 감독의 공식 기자 회견에 이어 등장한 벤투 감독도 못지않았다.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를 잡았다는 달뜬 표정이 전혀 없이 기자 회견장에 들어섰는데, 경기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놨다.
“오늘 경기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할 말이 있다. 먼저 오늘 경기에서 만원 관중을 일궈준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것에 대해서, 우리를 90분 동안 응원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위기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준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벤투 감독의 이 첫 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강팀을 잡은 약팀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감독이기도 하다. 그러면 당당한 승리에 취할 수밖에 없으며, 미디어와 팬들을 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승리에 취한 소감이 아닌,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 대한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그것도 가장 먼저.
벤투 감독의 기자 회견에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받은 답변이 있었는데, 벤투 감독 처지에서 가장 껄끄러울 장현수에 대한 얘기였다. 장현수의 경기력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벤투 감독은 차분하게, 그러나 조금은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장현수에 대한 질문에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이 선수의 과거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 언급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 점은 말하고 싶다. 장현수는 지금까지 나와 세 경기를 치렀는데, 상당히 높은 수준의 축구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평균 수준을 상당히 상회하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우리가 보호해야 선수고, 우리 미래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선수다.”
입때껏 한국 축구에서는 논란이 인 선수에 대해 감독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거나 모호하게 답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장현수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평균 능력을 상회하는 선수라며, 앞으로 한국 축구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과거에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현수를 보는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과 당당히 맞선 것이다.
이처럼 한국-우루과이전이 끝난 후에는 패배에 흔들리지 않는 타바레스 감독과 승리에 도취하지 않은 벤투 감독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 때 모두 표정과 말투 등을 유심히 살폈는데, 진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진중하기도 했다. 오랜 만에 무게감 있는, 능력도 갖춘 축구 감독의 인터뷰를 들은 것 같아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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