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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 국내
드라마틱한 반전, '팬덤' 몰고 온 벤투호
출처:포포투|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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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LEADER, NEW START(새로운 감독, 새로운 출발)’.

대한민국과 코스타리카가 친선경기를 펼친 8일, 고양종합운동장 2층 난간에는 파울루 벤투 신임 감독의 데뷔를 알리는 배너가 붙었다. 새 출발을 선언한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감은 만원 관중으로 확인됐다. 코스타리카전은 판매 티켓 3만5920석은 이날 오후 4시 현장 판매분까지 매진됐다. 유효좌석을 포함한 총 관중수는 3만6,127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축구는 2-0이라는 완벽한 스코어로 응답했다. 기성용은 ‘명불허전’ 패스를 열었고,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손흥민은 흐름을 주도했다. 이재성과 남태희의 연속골은 새 시대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90분 내내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울렸다. 불과 3개월 전 비난과 조소로 가득했던 분위기와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싸늘하게 돌아섰던 팬심을 다시 붙잡았다.

# 독일전 승리가 몰고 온 나비효과

2018월드컵 독일전 승리가 기폭제가 됐다.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연달아 패하며 궁지에 몰린 한국은 최종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을 꺾었다. 당시 FIFA랭킹 1위였던 팀을 상대로 전복의 역사를 만들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발휘한 투지와 집중력의 승리였다. 팬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기대감은 아시안게임으로 전달됐다. 독일전 승리 주역 손흥민이 아시안게임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솔선수범하며 자신감과 좋은 기운을 이식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 우승 후보들을 줄줄이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정상에 오르는 여정에서 한국이 보여준 경기력은 압도적이었다.



상승세는 고스란히 A대표팀으로 이어졌다. 90분 내내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몰아붙였다. 신임 감독 데뷔전이라는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선수들의 적극성은 남달랐다. 이재성은 독일전부터 코스타리전까지 좋은 기운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드컵에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독일전을 잘 마무리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선수단 분위기가 좋다. 이번에도 경기를 잘 치러야 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의욕적으로 뛸 수 있었다.” 손흥민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한 그는 “월드컵 후로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찾은 것 같다”면서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끼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 ‘점유’와 ‘지배’를 관통하는 공격의지

벤투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팀이 지향하는 축구를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며 최대한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적극성”이라고 설명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그 색깔이 드러났다. 베일을 벗은 벤투의 축구는 역동적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거의 일방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코스타리카 감독 로날드 곤잘레스는 “빠른 스피드와 좋은 피지컬, 파워를 갖고 있는 팀”이라며 “한국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벤투 감독이 언급한 ‘점유’와 ‘지배’는 공격 의지를 기반으로 한다.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한 장현수의 빌드업, 좌우를 크게 아우르는 기성용의 송곳 패스, 양 측면에서 쉼없이 올라서며 공격의 물꼬를 튼 홍철과 이용까지, 상대 골문을 향해 유의미한 움직임과 패스 전달이 이뤄졌다. 모든 선수들이 전방을 향해 패스하고 전진하며 골문으로 내달렸다. 공격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공격의 축 손흥민은 사실상 프리롤이었다. 하프라인까지 내려오는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의 힘을 빼놓기도 했다. 후반 초반 손흥민의 움직임과 동료들의 공격 의지가 만들어낸 명장면도 연출됐다. 손흥민이 이재성에게 전달한 볼이 장현수의 로빙패스와 지동원의 마무리슛으로 이어졌다. 매끄러운 연결 과정에 탄성이 쏟아졌다. 후반 막판 이용 대신 교체 출전한 김문환도 감독의 의중을 놓치지 않았다. 후반 42분 오른쪽 측면 깊숙이 올라선 뒤 골키퍼와 골대 사이 공간을 향해 슛을 시도했다. 센스가 돋보였다.



벤투 감독은 “90분 내내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비적으로도 좋았고 공격 전환, 역습에서의 연결에도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역동적인 축구에 선수들이 느낀 만족감도 높았다. 손흥민은 “선수들이 다같이 열심히 뛰었다. 저 선수가 못 뛰면 내가 뛰어주겠다는 마음들이 보였다”면서 “사실 90분을 뛰는 게 쉽지는 않다. 힘들다. 그래도 너무 재미있었다. 계속 이런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오늘 같은 정신력과 뛰는 양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다. 선수들 모두 인지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에너지도 생겼다. 월드컵 멤버에도 들지 못하고 아시안게임과도 무관했던 이들, 지동원과 남태희다. 코스타리카의 곤잘레스 감독은 “손흥민 외에 9번(지동원)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다. 남태희는 승리에 방점을 찍었다. 전반에는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이재성의 선제골에 기여했다. 후반에는 개인 기술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린 뒤 골을 넣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팀은 다시 건강한 경쟁 체제가 됐다. 이재성은 “감독님이 바뀐 후엔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며 “좋은 선수들이라 다 장점을 갖고 있다. 나도 나만의 강점이 있다. 잘 살려서 감독님께 어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축구장에 다시 등장한 팬덤

새로운 분위기는 관중석에서도 감지됐다. 여느 때와 달리 하이톤의 함성이 응원 구호를 압도했다. 만석을 채운 데 한몫 한 10대 소녀 팬덤 덕분이다. 본부석 좌우편으로 각종 응원 용품과 개인 카메라로 무장한 팬들이 자리를 잡았다. 기자석에서 이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팬들은 선수들이 등장해 경기를 마치고 나갈 때까지 일거일동에 반응하고 환호했다. 흡사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들의 등장이 반갑다. 축구의 대중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팬들은 응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적극적인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된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축구를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로 재생산하고 소비한다. 자신의 연결망을 통해 좋아하는 대상을 공유하고 설득에도 나선다. 아이돌, 배우, 예능인들도 이런 식으로 유통되는 컨텐츠의 양과 빈도에 신경을 쓴다. 축구에서 비슷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축구가 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속성이 있다면, 환상이 지속될 때 팬들의 관심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는 과정에서 폭발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풍경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이동국, 고종수, 안정환이 이른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2008년에는 기성용과 이청용이 전면에 등장했다. 박지성에 대한 신뢰와 ‘쌍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표팀과 K리그가 동시에 흥했다. 꼭 10년이 흘렀다. 지금은 손흥민의 시대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공격수가 대표팀의 선봉에 있다. 그리고 이승우가 있다. 실력과 개성, 쇼맨십까지 갖춘 기대주의 등장에 팬심이 요동치는 중이다. 코스타리카전에서 경기 종료 10여분을 남겨두고 둘이 교체되던 순간은 상징성을 갖는다. 손흥민이 김영권에게 주장 완장을 채워준 뒤 그라운드를 나오고, 이승우가 교체로 들어갔다. 이 과정이 영화의 롱테이크 숏처럼 전광판에 중계되는 내내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유지됐다. 체감상 장내 데시벨이 최고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경기장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경기 보시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도 했다. 확연히 달라진 경기력에 팬들은 박수 대신 휴대폰 플래시로 응답하며 교감했다. 새 감독, 새 주장,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함께한 관중석 분위기. ‘새로운 출발’이라는 슬로건에 더없이 적절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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