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은 두산을 넘어서겠다는 독기가 느껴졌다. NC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가 1차전부터 제대로 통했다.

NC는 지난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산을 13-5로 완파했다.

공수에 걸쳐 NC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 중심에는 단연 김경문 감독이 있었다.

경기 전 김경문 감독은 몇 가지 언급을 통해 변칙 운용을 가져갈 것임을 시사했다.

먼저 이재학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는 곧 기존 선발 자원 가운데 한 명이 불펜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최금강이 아닌 맨쉽이 그 대상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맨쉽에게 프리롤을 부여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번 보세요. 나올지도 모르니까”라는 답변과 함께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1차전부터 맨쉽을 선발 장현식 바로 뒤에 붙이는 초강수를 뒀다.

사실 김태형 감독도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기는 했다. NC가 경기 전 미출장 선수로 이재학과 해커를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맨쉽 카드가 완벽하게 적중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맨쉽은 이날 1.1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 1실점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맨쉽의 불펜 등판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정규시즌 내내 선발로만 나섰던 외국인 투수를 포스트시즌에서, 그것도 처음부터가 아닌 준플레이오프를 마친 이후 불펜으로 투입한다는 것은 확고한 결단이 필요한 선택이다.

김경문 감독은 시즌 막판 마운드 허리의 힘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두산 타선의 화력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보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맨쉽의 경우 정규시즌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불펜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이닝 이터로서의 역할까지 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과 지난해 월드시리즈까지 등판하는 등 큰 경기 경험이 많았고, 김경문 감독은 맨쉽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다.

맨쉽이 실점을 내주긴 했지만 1.1이닝을 버텨준 덕분에 NC는 준플레이오프까지 포스트시즌 전경기 출장을 이어왔던 원종현, 그리고 마무리 임창민에게 휴식을 부여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의 언급대로 2, 3차전에 쏟아낼 힘을 아끼는데 성공했다. 물론 해커가 선발로 나설 때에는 외국인 3명을 모두 기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맨쉽의 활용이 불가능하지만 맨쉽으로서도 해커의 등판일 및 이동일에 휴식을 취한다면 나머지 경기에서 보다 긴 이닝도 전력투구 할 수 있다.

토종 선발들의 활약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NC는 이미 준플레이오프까지 힘을 빼고 올라왔다. 때문에 정공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칙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차전에서는 우선 맨쉽의 불펜 투입 선택이 여러모로 좋은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김 감독이 예고한 빠른 타이밍의 교체 역시 이후 나온 투수들이 무실점 릴레이를 이어가면서 성공을 거뒀다.

또한 김경문 감독은 이날 나성범을 2번에 배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이미 준플레이오프부터 나성범 2번 기용을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에 가져갈 계획이 있다고 밝혔는데 바로 두산과의 1차전을 그 시기로 정했다.

김 감독은 나성범 2번 기용의 이유를 경기 종료 후 밝혔다. 이미 약속했던 부분을 지키고자 한 점, 나성범이 니퍼트에게 많은 타점을 내지 못했던 점을 거론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때 종종 2번으로 나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점, 나성범에게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의도도 함께 내포돼 있었다.

나성범은 이날 5타수 1안타에 그쳤다. 그러나 고의4구를 포함해 두 차례 출루했으며, 모두 득점을 기록하는 등 해결사 역할을 해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테이블 세터로는 충분히 제 몫을 다해냈다.

나성범을 2번에 배치했기 때문에 두산에게 정규시즌 가장 강한 모습을 보였던 박민우를 중심 타선에 과감히 투입시킬 수도 있었다. 박민우는 왼 발목 통증으로 역할을 다소 일찍 마쳤지만 3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으로 역시 주어진 역할에 맞는 활약을 펼쳤다.

이 밖에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만 선발로 기용했던 김준완에게 또 한 번 리드오프 중견수 역할을 맡긴 것도 변칙 승부수였다.

김경문 감독은 “잠실구장이 넓어 외야 수비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이 빠지면 3루타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며 수비가 좋은 김준완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단지 수비 뿐 아니라 뛰어난 선구안, 좋은 페이스 등에도 높은 기대감을 표했다.

김준완은 공수주 모든 면에 걸쳐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무엇보다 4회에는 추가 실점을 막아내는 환상적인 슈퍼 캐치로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확실하게 끌어올렸고, 결국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1차전 실질적 MVP나 다름없다는 찬사를 받았다.

두산의 벽을 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독하게 마음먹고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승부수들이었다. 이미 김경문 감독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됐지만 선발 투수를 해커로 변경하지 않고 최금강을 그대로 투입시켰다. 해커의 루틴을 존중하려는 취지에서 내린 결정이라 밝혔으나 최상의 전력으로 두산과 맞붙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물론 4차전 패배로 최상의 시나리오는 나올 수 없게 됐지만 김 감독은 곧장 또 다른 승부수들을 준비해 당당히 기선제압을 이뤄냈다.

김 감독은 이번 가을 축제 도중 아무것도 모른 채 덤벼들었던 감독 데뷔 첫 해 포스트시즌 기억을 떠올린 바 있다. 이미 지난 13년 간 충분히 쌓은 경험에 더해 올해는 겁 없었던 과거의 배짱까지 다시 장착한 느낌이다. 설욕에 대한 의지,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그만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