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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농구 '지각변동', PG 시대 도래하나?
- 출처:엠스플뉴스|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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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역사상 마이클 조던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 미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전 LA 레이커스 포인트가드 매직 존슨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말 그대로 존슨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아이콘 조던과 비견될 만큼 위대한 선수였다.
매직 존슨의 본명은 ‘어빙 존슨 주니어(Earvin Johnson Jr)’다. 고교 시절 존슨의 플레이를 눈여겨본 한 기자는 그에게 ‘매직(magic)’이란 칭호를 선사했다. 그리고 몇 년 후, NBA 데뷔한 존슨은 이름만큼이나 ‘마법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
존슨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PG)’였다. 포인트 카드는 키가 크면 불리하다는 농구계의 불문율을 깨고, 최고의 가드로 거듭났다(당시 존슨의 키는 206cm). 존슨은 농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티스트다. 신기에 가까운 패스와 날렵한 드리블로 보는 이들의 시선은 빼앗았다. 80년대 LA 레이커스 농구는 일명 ‘쇼타임’으로 불렸다. 당시 레이커스는 존슨의 활약을 앞세워 NBA 역사상 유례없는 빠른 템포 농구를 구현해냈다. 존슨은 실력뿐만 아니라 스타성까지 겸비한 최고의 스타였다. 특히 쇠퇴기를 맞은 NBA를 다시 살려낸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타급 포인트 가드의 등장은 언제나 NBA 흥행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존슨은 코트를 떠났지만,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비롯해 카이리 어빙(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크리스 폴(LA 클리퍼스) 등의 정상급 가드들이 새로운 왕좌를 노린다.
한국프로농구(KBL)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 원년이었던 1997년 이상민(대전 현대 걸리버스)을 시작으로 김승현(동양 오리온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김선형(서울 SK 나이츠) 등 굵직한 포인트 가드의 등장은 리그 흥행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됐다.
국내 최고의 포인트가드는 단연 현대 왕조를 건설했던 이상민이었다. 연세대 시절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상민은 프로 데뷔 시즌, 전년도(1997년) 7위 팀 현대를 한 시즌 만에 정규시즌 1위에 올려놓았다. 특히 이상민은 1997-98시즌 활약을 바탕으로 데뷔 첫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후 현대는 이상민과 함께 정규리그 우승 2회(1998-1999, 1999-2000), 챔피언 결정전 우승 2회(1998-1999, 2003-2004)의 부흥기를 누렸다. ‘농구 천재’ 허재(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펼쳤던 명승부는 아직도 농구팬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상민이 프로농구의 입지를 다졌다면, 서울 SK 나이츠 김선형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SK는 김선형이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차지했던 2012-13시즌, 단일팀 최다 관중 신기록인 190,727명을 동원했다. 모비스 역시 양동근이 MVP 수상했던 시즌에 역대 관중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양동근이 MVP를 차지했던 4시즌 동안 모비스는 역대 팀 관중 기록을 무려 3번이나 뒤집었다).
올 시즌(2016-17) 프로농구는 과거 영광을 재현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 대형 포인트 가드들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돌아온 매직 키드, ‘김태술’
국내 NO.1 포인트 가드로 군림했던 울산 모비스 피버스 양동근. 올 시즌 개막전에서 양동근은 왼쪽 손목 골절이란 큰 부상을 당했다. 팀 전력의 50% 이상으로 평가받았던 선수가 바로 양동근이었다. 양동근의 부상 소식은 소속팀 모비스에겐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농구계 한 관계자는 “모비스의 다양한 조각을 하나로 묶었던 양동근의 부재는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시즌 전 고양 오리온와 함께 우승 후보로 꼽혔던 모비스는 이제 중위권 순위 다툼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반면 서울 삼성 썬더스는 김태술이란 보물을 얻은 후 대반전을 경험하고 있다. 올 시즌 팀에 합류한 김태술은 ‘철인’ 주희정과 함께 팀 상승세를 이끌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김태술의 활약은 리그를 지배하고도 남을 정도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올 시즌 전 경기(9경기)에 나선 김태술은 평균 11.22득점, 5.9어시스트로 신인왕을 차지했던 시절(2007-08시즌) 못지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2015-16시즌 삼성은 가드진 부재로 골머리를 앓았다. 팀 내 최고참이자 유일한 포인트 가드 주희정이 홀로 한 시즌을 버텼다. 가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 리딩 능력을 갖춘 선수, 즉 실전 경기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단 이야기다. 일각에선 ‘차라리 이상민 감독을 투입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의 가려운 곳을 한 방에 해결한 선수가 바로 김태술이었다.
김태술은 이적 후 첫 경기였던 10월 23일, 울산 모비스전에서 10득점, 4어시스트로 합격점을 받았다. 이후 25일 안양 KGC 인삼공사를 상대로 13득점, 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분명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다. 특히 이날 기록한 3개의 스틸은 이날 경기의 향방을 갈라놓았다. 11월 6일 서울 SK전에선 자신의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득점인 19점을 쏘아 올렸다.
최근 가장 달라진 점은 꼽자면 김태술의 적극성을 들 수 있다. 도도하고, 가녀린 황태자 같았던 김태술은 삼성 이적 후 좀 더 적극적이고, 터프하게 플레이했고, 팀의 궂은일을 도맡으며 코트 위의 투사로 변신했다. 두 외국인 선수와의 찰떡궁합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팀 동료 마이클 크레익과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김태술과의 호흡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크레익은 “(김태술은) 굉장히 날카롭고 빠른 패스를 건네는 가드”라며 “KIM(김태술)과 함께 뛰면 템포 조절이 쉽다. 덕분에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태술은 그간 삼성에 부족했던 창의성을 팀에 불어넣었다. 팀 내 주포 문태영과 동료 선수들 역시 양질의 패스에 득점력 상승이란 호재를 맞았다. 삼성은 현재 7승 2패로 리그 2위에 올라있다.
변화 택한 야전 사령관 ‘박찬희’
김태술 못지않은 선수가 바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포인트 가드 박찬희다. 박찬희는 올 시즌을 앞두고, 201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 한희원과 맞트레이드 돼 팀을 옮겼다(KGC 박찬희 <-> 전자랜드 한희원). 혹자는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말했다. 박찬희는 그 말에 딱 맞는 활약으로 펼쳤다.
전자랜드에게 박찬희 영입은 ‘신의 한수’였다. 박찬희는 최근 4경기에서 평균 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자랜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지난 시즌 꼴찌였던 전자랜드는 현재 5승 4패로 리그 전체 4위에 올라있다.
‘박찬희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외국인 선수 제임스 켈리와 함께 호흡을 맞췄을 때 그 시너지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속공 시 두 선수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경기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차지했다.
박찬희의 공격적이고 빠른 경기 운영 덕분에 전자랜드는 올 시즌 가장 호쾌한 농구를 펼치는 팀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박찬희는 순도 높은 득점력을 뽐내기도 한다. 10월 30일 원주 동부 프로미전에선 20득점을 기록하며 특유의 공격력을 과시했다(박찬희는 올 시즌 평균 8.11득점을 기록했다. 그의 통산 평균 득점은 8.56이었다).
박찬희는 그간 공격 일변도의 플레이로 많은 질타를 받아왔다. 프로 선수들이 잘 하지 않은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박찬희의 플레이 방식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과한 욕심이 중요한 순간 팀을 위기에 몰아넣었고, 추격의 의지를 꺾는 원흉이었다.
하지만, 전자랜드 이적 후 박찬희에겐 큰 변화가 생겼다. ‘노련함’이란 무기가 추가된 것이다. 과도한 공격보단 상대를 속이고, 팀 동료를 이용하는 판단력이 플레이에 녹아들었다. 올 시즌 평균 6.6개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만 봐도 박찬희의 이타적인 농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스틸 부문에서도 2.33개로 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박찬희는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KGC의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데뷔 첫해(2010-11) 신인임에도 주전 포인트 가드로 낙점돼 평균 11.95득점, 4.3어시스트, 4.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새 야전 사령관의 등장에 안양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박찬희는 팀 동료 이정현을 제치고,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팀을 챔피언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특히 국내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장신(190cm) 가드란 점에서 미래의 대표팀 1번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최강자’ 김선형과 새로운 도전자들
김태술과 박찬희의 활약은 시즌 초반 KBL 판도를 뒤흔들었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으며 최고란 탄사를 자아냈다. 하지만 최고의 포인트 가드가 되기 위해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또한, 꺾어야 할 상대도 많다.
먼저 ‘패왕’ 양동근이 부상으로 코트를 떠났지만, 또 다른 강자 김선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테크니션‘ 김선형은 올 시즌 스타일 변화를 선언했다. 화려함(득점)을 줄이는 대신, 포인트 가드 본연의 임무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김선형은 현재 7.75개의 평균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공격 부담을 줄이니 오히려 평균 득점까지 늘어났다(2016-17시즌 평균 득점 15.13점).
여기에 외국인 가드 오데리언 바셋(오리온)과 키퍼 사익스(KGC)가 가세한 형국이다. 이미 조 잭슨(전 오리온)을 통해 외국인 가드의 폭발력을 경험한 바 있다.
바셋은 올 시즌 8경기에 출전해 3번의 20점 이상 경기를 만들어냈다. 11월 9일 창원 LG 세이커스를 제외하면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바셋은 아직 적응하고 있는 단계”라며 “공격 옵션이 워낙 다양한 선수다. 적응이 끝난다면 헤인즈와 함께 무서운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익스 역시 엄청난 탄력을 바탕으로 KGC 신형 엔진 역할을 도맡았다. 아직 바셋에 비하면 적응이 덜 된 상태다. 기복 또한 심한 편이다. 하지만 사익스가 폭발하면 얼마나 무서운지는 10월 22일 SK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15득점/8어시스트). 김승기 KGC 감독 역시 “적응만 하면 조 잭슨 못지않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새 시대의 영웅들이 KBL 코트 위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시작됐다.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는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자는 과연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