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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루, 카운트 3-1에서도 친다, 놀랍게도 8번 타자였다
출처:다음스포츠|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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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방적이다. 3게임을 하면서 도전자는 한번도 리드하는 점수를 얻지 못했다. 아니, 아예 점수 자체가 실종됐다. 합해봐야 1점이 전부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지경이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격차는 더 벌어진다. ‘보다가 졸았다’라는 비아냥부터, ‘최악의 한국시리즈’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급기야 패장의 사과까지 나왔다. “나름대로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타격이 안되고 있다. 팬들에게도 답답한 야구를 보여드리고 있어 죄송하다.”

반대로 상대편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121개를 던지고 그만 내려오겠다는 선발 투수를 8회에도 올렸다. “가서 그냥 한가운데로만 던져. 그래도 괜찮아. 니가 마운드에 있는 것 자체로 압박이 될 거야.” 한 뼘이나 작은 감독이 눈을 부릅뜨고 강권을 발동했다. 확신에 찬 지시였다.



추위가  매서웠다. 첫 한국시리즈를 맞는 홈 팬들의 함성도 대단했다. 반격을 노리는 상대의 초반 투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디펜딩 챔피언을 움츠러들게 하지는 못했다. 기세등등하게 상대를 압도했다. 자신과 확신에 찬 플레이가 이어졌다.

‘판타스틱 4’의 위력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4번 타자의 홈런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상대에게 가장 치명적인 내상을 입힌 것은 8번 타자였다. 수줍게도 타순 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그가 중요한 고비마다 폭발했다. 사실상 승리를 결정짓는 타격을 시전했다.

타격감? 컨디션? 물론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호타를 완성시킨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하드웨어적인 부분도 아니었다. 망설임, 주저함이 1도 없는 단호함이었다. 자신과 확신에 찬 스윙이었다. 그게 그의 팀이 가진 현재 분위기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면이다.

초구부터 용서 없는 응징

홈 팀 선발 최금강은 의외였다. 초반을 안정적으로 버텼다. 4회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혹시?’라는 기대감이 높아질 무렵이었다.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곧이은 말 공격에서 박민우의 안타, 나성범의 볼넷으로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 다음은 ‘테이박’이다.

첫번째 승부처였다. 선취점이 나면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마산 팬들의 기대는 추운 날씨의 입김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야 플라이, 삼진, 투수 땅볼. 너무나 무력했다. 주자들을 한 베이스도 진루시키지 못한 채 이닝이 끝났다. 오히려 3자 범퇴만도 못했다. 싸늘하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홈 팬들의 옷깃을 파고 들었다.

차려준 밥상을 마다했다. 그럼 다음 차례는 호된 문책이다. 그게 강한 팀을 상대할 때 괴로운 점이다. 잊지 마시라. 그들은 정규시즌 최다승 기록을 세운 팀이다.

최금강은 5회 선두 타자 김재환에게 첫 안타를 맞았다. 우측 담장을 넘어간 홈런이었다. 선제점이 아프지만 괜찮다. 아직 중반이고, 1점 쯤이야…. 걱정스럽던 에반스와 오재일을 쉽게 잡아냈다. 다음은 7,8,9 하위 타선이다. 후유증 없이 이닝을 끝낼 것 같다.

그런데 아니었다. 양의지가 센터 쪽으로 홈런성 타구를 날렸다. 다행히 담장에 맞았다. 2사 2루. 갑자기 1루쪽 덕아웃에 비상이 걸렸다. 1루가 비었으니, 조심하라는 사인이 나온다. 당연히 좋은 공은 안 줄 것이다.

타석은 8번 타자다. 포수 김태군이 초구에 몸쪽 사인을 냈다. 그리고 안쪽으로 옮겨 앉는다. 아마 바짝 붙여보고 안되면 승부를 다음 타자로 미루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타자는 별 생각 없어 보인다. 아뿔사. 투구가 약간 가운데로 몰렸다. 134㎞짜리였다. 머뭇거림이 없다. 망설임도 없다. 가차없이 방망이가 돌았다. 타구는 좌중간을 향해 커다란 포물선을 그렸다. 최금강이 고개를 떨궜다. 선발을 강판시킨 묵직한 2점째였다.



기백이 실린 스윙, 배트가 박살나도 타구는 외야로 

사실 홈 팀의 공격력은 2-0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다. 불펜이 약하니까. 혹시라도 틈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미한 빛이라도 있었다.

그걸 통째로 날린 게 9회였다. 볼넷과 안타, 그리고 희생 번트로 1사 2, 3루가 됐다. 다음은 양의지다. 수비쪽은 선택의 여지도 없다. 어차피 지고 있다. 고의 4구로 만루를 채웠다. 그러다 보니 또 8번 타자를 만나게 됐다.

초구 유인구에 헛스윙이 나왔다. 그리고 내리 3개의 볼이 꽂혔다. 카운트는 3-1이다. 완전한 타자 편이다. 투수는 흔들림이 완연하다. 스트라이크 한 개도 힘들어 보인다. 거푸 2개를 존 안에 넣을 수 있을까.

보통이라면 당연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중심 타선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하위 타선이라면? 알아서 자중해야 한다. 그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8번 타자는 그런 거 없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어디 갈 데 없잖아. 이제 스트라이크 던져야지’ 그렇게 묻는 눈빛이다. 5구째가 왔다. 몸쪽에 146㎞짜리다. 존에 걸칠듯 말듯한 코스다.

그럼에도 스윙은 단호했다. 방망이가 박살났다. 하지만 타구는 죽지 않았다. 타자의 기백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공은 3루수 키를 넘어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두 명의 주자가 홈을 밟았다. 치명적인 2점이 됐다. 투수가 또 바뀐다.



도취되지 않은 집중력…더블 스틸까지 

4-0이 되자 홈 팀은 코마 상태다. 계속된 1사 1, 2루. 승리를 확인하는 플레이가 이어졌다. 더블 스틸이다.

2루 주자가 양의지였다. 그가 3루로 뛰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신출내기 투수(배재환)가 앞만 보고 던지자 기습을 감행했다. 영리함과 재치가 번뜩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함께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1루 주자의 기민함이다.

양의지의 3루행은 본인의 기획이었다. 벤치의 의도와 무관했다. 즉흥적인 판단에 의해 실행된 일이다. 만약 사인 플레이였다면 1루 주자도 함께 스타트를 끊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계 화면을 리플레이시켜 보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2루 주자는 투수가 발을 올리기도 전에 이미 3루로 달리기 시작한다. 서너 걸음 움직인 뒤, 1루 주자가 비로소 스타트한다. 그건 양의지의 의도를 알아채고 순간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플레이다. 이럴 때 1루 주자는 ‘아차’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넋 놓고 있다가 출발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상대편도 깜빡 속는 데, 우리 팀이라고 별 수 있겠나. 만약 자신의 활약상과, 승리 분위기에 도취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플레이였다.



심드렁하게 난로 불 쬐는 감독

나테이박은 3경기에서 (41타수 동안) 4안타 밖에 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8번 타자는 혼자서 5안타를 치고 있다.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는 9회 2타점 적시타를 치고 1루에서 환호했다. 감독은 그걸 보고도 심드렁하다. 박수 두어번 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난로 불을 쬔다. 마치 별 일 아니라는 표정이다.

단기전은 기세 싸움이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플레이가 없으면 상대를 제압하지 못한다.

9회 1사 만루였다. 볼카운트 3-1이었다. 여기서 8번 타자가 마음껏 방망이를 돌렸다. 그리고 감독은 (웨이팅 사인도 없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놔두고 있다. 그게 그들이 이번 시리즈에서 압도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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