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Not Found
- '무관의 제왕' 찰스 바클리, 쓴소리 자격 있는 '위대한 4번'
- 출처:스포티비뉴스|2016-07-20
-
404 Not Found 404 Not Found
nginx 인쇄
쓴소리를 내뱉을 자격이 있다.
‘위대한 리바운더‘ 찰스 바클리(53)는 유니폼을 벗은 지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심장을 자랑하고 있다. 아들뻘 되는 후배를 향해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네고 여러 농구 방송 프로그램에서 거침없는 입담을 뽐내고 있다.
최근에는 케빈 듀란트가 콘퍼런스 맞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한 것과 관련해 "무임 승차에도 정도가 있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마크 큐반 댈러스 구단주, 애틀랜타 호크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도 바클리의 입에 올라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그의 현역 시절을 모르는 팬이라면 바클리의 쓴소리가 불편할 법도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골 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력과 빼어난 박스 아웃, 가드 못지않은 패스 감각을 코트에서 펼쳤던 바클리의 ‘그때 그시절‘을 살펴봤다.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 평가 받는 1984년 신인 지명 회의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전체 5순위로 호명됐다. 2m가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키를 지닌 포워드는 데뷔 첫해부터 눈부신 기량을 펼치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데뷔 2년째부터는 정상급 빅맨의 기준인 평균 20점-10리바운드를 11년 연속 수확하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1996년 11월 4일(이하 한국 시간) 유타 재즈와 경기에서는 9점 20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챙기며 NBA 역사상 4번째로 2만점, 1만 리바운드, 3,500어시스트를 동시에 넘어선 선수가 됐다. 강한 승리욕으로 유명했던 ‘오번대학교의 빵 트럭‘ 바클리는 그렇게 레전드 빅맨으로 NBA 연감에 이름을 올렸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1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다. 1992년 여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원조 드림팀‘ 멤버로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 NBA 팀에 무려 11번이나 뽑혔다. 선수 생활 최전성기는 1992~1993시즌이었다. 커리어 유일한 파이널 진출을 경험했던 그해 76경기에 나서 평균 25.6점 12.2리바운드 5.1어시스트 1.57가로채기를 기록했다.
마이클 조던을 제치고 정규 시즌 MVP에 선정됐다. 파이널에서 조던이 이끈 시카고 불스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지만 케빈 존슨, 리차드 듀머스, 댄 말리, 데니 에인지 등과 펼쳤던 ‘선즈 농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9~2000시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대장 늑대‘ 케빈 가넷이 경기당 평균 22.9점 11.8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수확했다. 20점 이상을 넣으면서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챙기는 엘리트 빅맨은 콘퍼런스마다 예닐곱 명은 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남기면서 5개가 넘는 ‘A패스‘를 배달하는 빅맨은 매우 적었다.
당시 가넷이 이 기록을 세웠을 때 여러 미국 언론은 "바클리만 해낼 줄 알았던 이 기록을 고졸 출신 선수가 이뤘다"며 대서특필했다. 그만큼 바클리의 농구 재능은 진기록의 선례로 입에 오를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포지션 사이의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는 현대 농구에서도 빅맨의 신체 조건을 지닌 포워드가 평균 20점-10리바운드-5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바클리는 빅맨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크게 한몫한 대선배다. 1980년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 1990년대 가넷과 그랜트 힐 등과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언더사이즈 빅맨이 NBA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 줬던 세대를 넘나드는 최고의 필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