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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감히 수작을..' 꼼수 박살내는 김현수
- 출처:다음스포츠|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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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가 나왔다. 횬~쑤~킴~. 하지만 그 순간 사람들의 관심은 엉뚱한 데 있었다. 애덤 존스 때문이다.
그는 6회 1사 2루에서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초구에 힘차게 돌렸지만 타구는 위쪽으로만 거리가 나왔다. 까마득하게 뜬 공은 좌익수 글러브 속에 들어갔다.
그러자 타자는 특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치기 좋은) 자기 볼인데 놓쳐서 아깝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1루 근처에서 난데 없는 사커 킥을 구사했다. 씹고 있던 껌을 ‘후’ 뱉더니 정확한 오른발 발리 킥을 성공시킨 것이다.
현지 중계팀은 이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재생시키며 키득거렸다. 키커의 운동 능력에 대한 짧막한 멘트도 곁들여졌다.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100주년) 탓에 축구 열기에 흠뻑 빠진 지금 미국의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웃고 즐기던 그 순간. 그라운드에서는 여전히 총칼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웃 카운트 1개, 점수 하나를 위해 갖은 암수와 꼼수, 모략이 난무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그 대목에서 우리의 땅볼 요정은 시즌 6번째 타점을 올렸다. 좌익수 앞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안타였다. 유격수가 제자리였다면 평범한 땅볼이다. 사람들은 ‘시프트를 깨뜨렸다’며 환호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거긴 꽤 음미할만한 트릭이 숨겨져 있다. 오늘 <…구라다>의 메뉴다.
설계가 시작되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원정 팀 포수는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1루 쪽을 가리킨다. 비어있다는 사실을 투수에게 환기시킨 것이다. 즉 ‘2사 2루니까 괜히 좋은 거 줄 필요 없다. 어렵게 가다가 여차하면 채워도 된다’는 사인이다.
하지만 그건 구라고, 페이크다. 사실은 여기서부터 수비측의 ‘설계’가 시작됐다. 그 동작은 ‘이제부터 공사 들어간다’는 의미다. 표적은? 물론 눈에 가시 같은 2루 주자(플래허티)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타자(김현수)도 대상이 된다.
‘1루를 채워도 된다’가 왜 뻥카인가. 물론 타자는 앞 타석에 안타를 쳤다. 타율도 3할이 훨씬 넘는다. 하지만 다음 타순이 3, 4번으로 이어진다. 굳이 채워서 부담을 키울 필요가 없다. 당연히 그 타석에서 끊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려운 승부를 하겠다’고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건 ‘우리 외곽쪽 공/변화구 많이 던질 거야’라는 페이크 동작이다.
그런 맥락으로 첫번째 공이 왔다. 바깥쪽 변화구였다. 아주 먼쪽에 브레이킹 볼로 스트라이크
를 잡았다. ‘어렵게 간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킨 대목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다.
투수가 갑자기 안하던 짓을
사전 작업은 끝났다. 드디어 작전 개시. 2구째 배터리가 사인을 교환한다. 이 때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마운드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가 갑자기 두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킨다. 포수 사인이 잘 안보인다는 뜻이다. 뭐, 그럴 수 있다. 야간 경기 때 흔한 일이다. 게다가 2루에 주자가 있으니 (훔쳐 볼까봐) 포수의 사인은 더 깊숙이 숨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전까지는 멀쩡히 잘 봤다. 방금 올라온 투수도 아니고 5회부터 2이닝째 던지는 바야누에바였다. 그런데 갑자기 안보인다니. 그건 뭐가 있다는 뜻이다. <…구라다>는 그걸 작전 개시 신호라고 본다. 포수와 내야수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포수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는 즉시 오른손을 빙글빙글 돌린다. 아마 이건 OK 사인 같은 것이리라. ‘알았다. 그렇게 하자’는 합(合)을 맞추는 동작일 것이다.
즉 그들의 기획은 2루 주자에 대한 픽 오프(pick off)였다. 포수 견제구로 잡아내려고 트릭을 쓴 것이다. 몇가지 요소를 종합해 보자. 2루 주자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리드 폭을 키워야 할 상황이었다.
① 2사 후다. 웬만한 안타에도 홈 승부다.
② 타자는 땅볼 안타가 많다. 외야 쪽으로 가더라도 거리가 짧을 것이다.
③ 상대는 유인구(변화구) 승부를 많이 할 것 같다. 포수가 공을 흘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3루로 갈 기회가 생길 지 모른다.
스마트한 타격 기계
공격측의 이런 욕심은 당연하다. 한 점이라도 더 도망가면 후반이 편해진다.
반면 수비는 그걸 역이용 하고 싶다. 왜? 반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2-6으로 뒤지던 때였다. 보통으로는 뒤집기 어렵다. 특별한 퍼포먼스가 요구된다. 드라마틱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다. 만약 2루 주자를 멋지게 잡아내면서 이닝을 끝낸다면? 더 이상 짜릿한 활력소는 없을 것이다.
함정을 파고, 제물을 가둘 것이다. 공사의 마무리는 저격수다. 홈에서 2루까지. 쉬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있다. 포수가 베탄코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에 이대호 팀과 경기에서 잠시 마운드에도 올랐다. 그때 무려 96마일(155㎞)까지 뽑아냈던 타고난 어깨다.
꼼꼼하게 밑밥을 깔았다. 치밀하고 복잡하게 계산했다. 호시탐탐 타이밍을 노렸다. 신중한 사인을 주고받으며 과감하게 결행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사는 한 방에 역습 당했다. 2구째, 픽 오프를 위해서 바깥쪽으로 높게 빼려던 공이 존 안으로 살짝 몰린 게 문제였다.
타자가 누군가. 땅볼 요정 아닌가. 가벼운 스윙이었다. 타구는 별로 힘이 없었다. 데굴데굴 굴렀다. 유격수 쪽이다. 그런데 수비가 안 보인다. 픽오프를 위해 2루로 뛰어들어간 찰라였다.
강하지 않은 타구는 텅 빈 곳을 자유롭게 통과했다. 얕은 안타지만, 2루 주자가 홈에 들어올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타자 자신도 어느 틈에 2루까지 진출했다.
수비는 허탈함에 고개를 떨궜다. 관중석에서는 웃음과 갈채가 터졌다. 홈 팀 덕아웃에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새로 수입된 스마트 버전 타격 기계를 향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