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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대세’서장훈이 남긴 KBL 16년의 기록들
출처:바스켓코리아|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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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KBL 레전드인 ‘국보센터’ 서장훈(41)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KBL 역사의 주인공인 서장훈은 각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뿐 아니라 많은 광고에도 출연하며 농구선수가 아닌 예능인으로 탈바꿈했다. 본인은 ‘지인과 친분으로 출연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능 대세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많은 방송에 출연 중이다.

1990년대 중반, 대학 팀 최초 농구대잔치 우승 역사를 만드는 등 연세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장훈은 잠시 미국으로 농구 유학을 다녀온 후 KBL에 진출했다. 그리고 수많은 기록을 남긴 후 2012-13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택했다.

KBL에서 서장훈은 자신이 활약했던 16년(1998-2013) 동안 무려 6팀을 거쳤다. 서장훈이라는 이름 값에 다소 걸맞지 않는 소속 팀 수다. 득점과 리바운드 부분에서 뚜렸한 족적을 남겼음을 감안할 때 다소 특이한 이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농구에 대한 열정과 욕심, 그리고 뚜렷한 철학을 가졌던 결과였다.

서울 SK(1998-2002)를 시작으로 서울 삼성(2002-2007), 전주 KCC(2007-2009)와 인천 전자랜드(2009-2011), 그리고 창원 LG(2011-2012)에 이어 부산 케이티(2012-2013)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했다.

16년 동안 총 688경기에 출장한 서장훈은 평균 19.23점, 7.6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11년까지 13년 동안 자신이 소속된 팀을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고, 세 차례(1990-2000, 2001-2002, 2005-2006)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시켰다.

‘플레이오프 보증수표’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활약이었고, 두 개의 챔피언 반지를 거머 쥘 수 있었던 서장훈이었다. KBL을 지배했더 서장훈의 16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보자.

‘득점 머신’ 서장훈 

서장훈은 16년 동안 13,231점이라는 놀라운 득점 숫자를 만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평균 19.23점으로 16년 동안 꾸준히 활약해 만들어낸, KBL이 자랑하는 대기록이다.

서장훈이 만들어낸 총 득점은 현재까지 누구도 넘기 힘들어 보인다. 2위는 현재 전주 KCC 이지스 감독인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10,019점, 평균 13.58점)며, 현역 선수로는 원주 동부의 포워드 김주성(9,194점, 평균 15.10점)이 4위에, 또 한 명의 KBL 전설이 될 서울 삼성의 포인트 가드 주희정(8,191점, 평균 8.86점) 5위에 랭크되어 있다. 현역 선수로 득점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는 유이한 인물이다.

두 선수는 현역으로 활약 중이지만, 서장훈의 득점을 넘어설 확률은 적어 보인다. 주희정은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고, 김주성 역시 해가 다르게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본인 역시 공격보다는 수비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서장훈과 김주성이 가장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서장훈은 공격력에서, 김주성은 수비력이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 서장훈이 688경기를 뛰어 만든 총 득점이며, 김주성은 현재 609경기를, 주희정은 무려 924경기를 출장 중이다. 경기 관련 효율과 득점 양산 확률로 보아도 서장훈을 넘어설 확률은 적어 보인다. 아래 표는 서장훈의 년도 별 득점 추이다.

 

 

서장훈은 KBL 창립 3년 차였던 1998-99시즌에 프로에 데뷔했고, 이후 7년 동안 +20점을 기록했다. 인사이드 플레이어였던 서장훈이 외국인 선수들과 주로 상대해 만든 의미있는 득점 기록이었다.

데뷔 시즌(1998-99) 서장훈은 득점 3위에 올랐다. 평균 25.44점을 만든 서장훈은 버나드 블런트(당시 창원 LG, 29.93점), 인천 대우(현 인천 전자랜드) 카를로스 윌리엄스(27.67점)에 이어 3위(25,44점)를 차지했다. 당시 KBL을 누볐던 20명 선수 중 18명을 넘어선 대단한 사건이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신인의 신분이었던 서장훈은 그렇게 시작부터 KBL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득점 20걸 안에 포함된 토종 선수는 단 4명이었다. ‘매직히포’ 현주엽(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이 5위(23.94점), ‘람보슈터’ 문경은(서울 SK 감독)이 9위(21.82점), ‘사마귀슈터’ 김영만(원주 동부 감독)이 14위(20.23점)이 존재할 뿐 이었다. 나머지 16자리는 모두 ‘작은 탱크’ 조니 맥도웰(당시 대전 현대), 당대의 최고 테크니션으로 평가받았던 제럴드 워커(당시 SBS스타즈) 등 외국인 선수로 채워졌었다. 대한민국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서장훈의 기록이었다.

이후에도 서장훈은 꾸준히 득점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1999-00시즌에는 평균 24.24점을 기록하며 부산 코리아텐더(현 부산 케이티) 에릭 이버츠(27.67점)에 이어 2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24.58점으로 7위에 올랐다. 7시즌 동안 외국인 서수 포함 득점 1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서장훈이다.

서장훈은 2005-06시즌 처음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평균 19.67점을 기록하며 11위로 떨어진것. 데뷔 후 7시즌 동안 탄탄한 하드웨어와 득점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와 맞장을 뜨며 평균 +20점을 만들어낸 서장훈이었지만, 흐르는 세월을 버텨내긴 버거웠다.

이후 서장훈은 조금씩 득점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LG 시절(2011-12시즌)에는 첫 -10점을 기록하는 수모(?)도 맛봤다. 그리고 은퇴를 맞이한 2012-13시즌 부산 케이티에서 평균 10.32점을 기록하며 쉽게 깨지 못할 득점 기록 마감과 함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언젠가 깨질 기록이지만, 당분간 서장훈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 같다.

리바운드도 접수한, 골밑의 제왕(帝王) 서장훈 

서장훈이 16년 동안 만들어낸 리바운드는 모두 5,235개. 이 부분 역시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1위를 달리고 있다. KBL을 씹어먹은 서장훈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서장훈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는 또 한명의 KBL 전설로 등극이 예정된 원주 동부의 포워드 김주성. 3,959개를 기록 중인 김주성 기록에 서장훈은 1,276개를 앞서면서 1위를 기록 중이다. 또, 7.61개를 기록 중인 평균치도 김주성이 기록 중인 6.50개를 넘어선다.

20년에 가까워지는 KBL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인사이더로 평가 받는 두 선수의 기록에서 서장훈이 앞서고 있다. 평균치로 환산했을 때, 김주성이 현역으로 4년 이상을 뛰어야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서장훈이 기록한 년도별 리바운드 현황이다.

 

 

서장훈이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잡아낸 시즌은 데뷔 시즌(1998-99)이었다. 평균 13.97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 기록은 외국인 선수 포함 전체 1위 기록이다. 34경기를 뛰면서 만들어낸 기록으로 45경기 동안 평균 13.53개를 잡아냈던 조니 맥도웰(당시 대전 현대)을 물리치고 리바운드 패권을 차지했다.

1998-99시즌, 토종 선수는 리바운드 20위 안에 단 두 명만 존재했다. 한 명은 평균 6.35개로 19위에 랭크된 현주엽 뿐이었다. 서장훈이 차지한 1위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는 숫자이자 순위였다.

이후 서장훈은 세차례 +10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1999-2000시즌(10.04개)과 2001-02시즌(10개), 그리고 2002-03시즌(10.98개)로 +10개를 제작했다. 16년 동안 KBL 코트를 누비며 만들어낸 의미있는 기록이었다.

서장훈은 KBL 자존심을 지켜낸 선수였다. 늘 짜증스러운 얼굴과 제스처로 인해 많은 안티 팬을 양산했지만, 그의 진지함 속에는 ‘나는 대한민국 남자농구의 자존심’이라는 열정이 있었다. 자신보다 탄탄한 하드웨어와 좋은 탄력을 가졌던 외국인 선수와 대결에서 굴하지 않고 골 밑에서 버텨주었고, 그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많은 기록을 만들어냈다.

서장훈의 자존심은 1994년 부산 아시안 게임 결승전을 통해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결승전 상대는 중국. 그리고 당시 중국에는 중국의 자존심인 NBA 리거 야오밍이 존재했다. 야오밍의 신장은 무려 223cm. 하지만 서장훈은 굴하지 않고 야오밍을 막아내는 데 사력을 다했고, 결국 한국 대표팀이 만리장성을 넘어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12년 만에 AG 금메달을 탈환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낸 당시 서장훈의 활약이었다.

2015년, KBL은 불법 도박 논란과 혼란스러운 규정 등 악재와 과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서장훈과 같은 선수의 역사가 KBL을 지탱해주고 있다. 계속해서 KBL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레전드의 탄생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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