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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A 흑인 1호’ 얼 로이드의 위대한 유산
- 출처:이데일리|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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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덴젤 워싱턴이 출연한 영화 ‘리멤버 타이탄’(2000년)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사회 속 과거 흑인들이 겪었던 고통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영화는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흑인은 차별받는 존재로 여겨지다가 점차 편견이 줄어드는 과정을 담았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故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부르짖던 1963년보다 무려 13년 전이나 일찍 흑인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불어넣어준 선수가 있었다. 바로 故 얼 로이드다.
저명한 시사주간지 ‘타임’과 최대 일간 ‘USA투데이’ 등 미국 유력 언론들은 “NBA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얼 로이드가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지난 26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얼 로이드는 척 쿠퍼, 넷 클리프턴과 함께 1950년 리그에 입성했다. 시즌 일정상 얼 로이드는 가장 먼저 경기에 나선 흑인 선수로 기록됐다. 그는 1950년 10월 31일 워싱턴 캐피톨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섰다. 이어 쿠퍼(보스턴 셀틱스)가, 그 뒤를 클리프턴(뉴욕 닉스)이 따랐다.
비록 데뷔 첫해 7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더 빗 캣(the Big Cat)’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백인 센터 조지 마이칸이 리그 최초의 슈퍼스타로 군림하던 그 시절 미국 사회는 흑인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백인 선수들보다 운동능력이 좋았지만, 출장기회도 적었을뿐더러 공격에 잘 투입되지 못했다. 주로 수비를 담당하는 게 흑인 선수들의 임무였다. 경기 내외적으로도 차별적 모욕을 들어야 했다.
로이드는 현역 생활 동안 총 560경기에 나서 평균 8.4득점 6.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기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는 1954-1955시즌 소속팀 시라큐스 내셔널이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시즌 평균 10.2득점 7.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시는 블록과 스틸이 기록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블록과 스틸이 집계됐다면 그의 가치는 더욱 빛났을 수 있다. 주로 궂은 일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1960년 은퇴 당시 그의 총 득점은 4682점. 이는 오늘날 리그 득점왕급 선수가 두 시즌 정도면 올릴 수 있는 기록이지만, 로이드의 존재 의미는 기록 그 이상이다. NBA 흑인 진출의 길을 연 주역이기 때문이다. 온갖 차별과 핍박을 받으며 선수생활을 이어간 그는 결과적으로 후대 흑인 선수들의 리그 진출 길을 터줬다. 최초의 NBA 흑인 선수라는 공로로 그는 지난 2003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로이드가 타계하자 스포츠전문매체 ‘야후스포츠’의 마크 스피어스 기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슬프다. 로이드는 NBA 최초의 흑인 선수였다. 전 세계는 위대한 사람을 잃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ESPN은 “NBA의 개척자(NBA pioneer)”라는 타이틀로 로이드의 업적을 기렸다.
“아프리카로 돌아가라” 로이드는 과거 인디애나폴리스 홈팬들이 자신에게 이같이 외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리그에서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젊은 NBA 선수가 어느 날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더라. ‘우리는 당신에게 빚졌다’고”
로이드의 생전 인터뷰는 자신으로 인해 리그가 변화한 부분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흑인 선수들의 NBA 입문은 줄을 잇고 있다. 현재 리그 대부분의 선수들이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계다. 로이드의 유산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