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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년 빛낸 김연아
출처:조이뉴스24|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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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2008~2009 SBS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로 기억된다. 당시 기자 옆에서 선수들의 연기를 지켜보던 한 방송사 프로듀서 A씨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몇 번의 연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 변신이 확실한 친구임에 분명하다. 방송가에서 탐을 내기에 충분하지만 피겨 선수로서도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래 발견한 보석같은 느낌이다."

누구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피겨 여왕‘ 김연아(24) 이야기다.

피겨를 대중적으로 만든 김연아

김연아는 어느날 갑자기 대중 앞으로 다가왔다. 이는 피겨계 밖에서 본 시각이다. 하지만, 피겨계에서는 될성 부른 떡잎이면서 자만을 모르는 노력파로 일찌감치 알려졌다. 피겨가 대중화되지 않은 스포츠였지만 그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위치로 올라섰다.

지금은 어느 정도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A씨는 "당시 윗선에 피겨 중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고 공감도 했다. 하지만, 이미 타 방송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김연아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됐든 선수 한 명이 종목의 사이즈를 크게 만든 것은 대단하다. 다시 김연아같은 선수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회상했다.

김연아는 12살 때인 2002년 트리플(3회전) 점프 5종(러츠, 플립, 토루프, 루프, 살코)을 완성했다. 그 해 트리글라프 트로피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더니 14살 때인 2003년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2004년 2004~2005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해 파이널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숨어있던 재능을 마음껏 꺼내보였다. 일반인들이 몰리는 과천빙상장에서 야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이 야간에 훈련하는 것은 올바른 성장을 그르칠 수 있다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는 빙판을 지치고 또 지쳤다. 좋은 환경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2005년 3월, 김연아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피겨에 첫 메달을 안겨다줬다.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피겨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6~2007 시즌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 프리스케이팅 ‘종달새의 비상‘을 들고 나왔다. 그랑프리 2차 대회 동메달, 4차 대회 금메달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는 대역사를 연출했고 우승이라는 기적을 완성했다.

어린 시절 딱딱한 빙질에서 연습해 훈장처럼 얻은 허리 통증에 진통제를 맞고 나섰던 투혼의 결과라는 점에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2008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관절 통증을 이겨내고 동메달을 수확하며 세계 수준으로 얼마든지 올라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피겨여왕의 거침없는 행진은 계속되고…

2008~2009 시즌은 김연아를 세계적인 스타로 바꿔놓은 해였다. 부상없이 말끔하게 대회에 나섰고 두 번의 그랑프리 시리즈를 석권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2009 4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정상은 모두 김연아의 차지였다. 무엇보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총점 207.71점이라는 놀라운 역사를 썼다. 신채점방식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

상승세 흐름을 탄 김연아는 2009 그랑프리 시리즈 2개를 쓸어담고 파이널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주변에서 아사다 마오(일본)를 끊임없이 라이벌이라며 긴장을 주려했지만 그는 오직 자신과 싸웠다.

김연아의 고관절과 허리 통증을 잘 알고 있었던 익명의 관계자는 "피겨는 점프가 많고 제한된 시간 내에 체력을 쏟아야 되는 종목이다. 관절을 아무리 정상까지 되돌렸다고해도 가해지는 충격을 버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엑스레이(X-ray)만 봐도 ‘아 이번 대회 출전은 무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치료를 다 하고 나서 대회를 나가 금메달을 따고 우승을 쓸어 담으니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투혼을 발휘했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가 싶었다"라고 전했다.

철저한 몸관리가 습관이었던 김연아는 생애 첫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모두 역대 최고점 기록을 넘어섰다. 총점 역시 228.56점의 세계 신기록으로 자랑스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을 바라보며 흘린 감동의 눈물은 국민 모두의 것이었다.

올림픽을 제패한 김연아는 여자 싱글 최초로 세계선수권, 4대륙,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휩쓰는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됐다. 놀라움과 위대함을 함께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 신혜숙 코치, 류종현 코치,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의 요구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고 호흡도 좋았다.

동시에 록산느의 탱고-종달새의 비상(2006~2007 시즌)부터, 박쥐 서곡-미스 사이공(2007~2008), 죽음의 무도-세헤라자데(2008~2009), 007 메들리-피아노 협주곡 바장조(2009~2010), 지젤-오마주 투 코리아(2011), 뱀파이어의 키스-레미제라블(2012~2013),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아디오스 노니노(2013~2014)까지 매 시즌 서로 다른 느낌의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팔색조 연기는 오직 김연아의 것이었다.

모두의 영웅, 냉정한 승부사 기질 발휘하고 책임도 완수

올림픽 금메달 이후 김연아는 허무함에 빠졌다. 꿈을 이뤄낸 뒤 빙판에 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 스스로도 "운동하기 싫을 때가 많았고 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너무나 어려워서 방황했다"라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김연아의 선택은 2010~2011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불참이었다. 그래도 공백을 딛고 나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공백기가 무색하게 여전한 실력을 뽐낸 김연아를 향해 세계 피겨계는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하지만, 김연아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로 나서며 빙판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유창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김연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마음을 훔치며 평창에 올림픽을 선물했다.

대외적인 활동이 잦으면서 이런저런 논란에도 휩싸였지만 대중들은 김연아를 사랑했다. 김연아의 선택이 장고를 거듭해도 믿어주며 기다렸다. 팬들 사랑의 무게를 느낀 김연아는 2012년 7월 빙판 복귀와 함께 2014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달리겠다고 선언했다.

김연아는 B급 대회에 출전하며 단계별로 자신을 끌어올린 뒤 2013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 1위를 차지하며 한국에 3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가져왔다. 덕분에 박소연(17, 신목고)과 김해진(17, 과천고)이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김연아 언니‘가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2014 소치 올림픽은 ‘억울한 은메달‘로 마감했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긍정적이었다. 국민적인 위로에 오히려 ‘괜찮다‘며 치유의 언어를 내뱉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항소할 수 있었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포기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인배‘답게 홀가분한 짐을 덜었다며 현역 생활을 깔끔하게 마감했다.

김연아는 대학원에서 공부에 집중하며 한국 피겨 발전을 위해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시니어 무대에 나선 박소연과 김해진을 코칭하고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로 움직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와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피겨 여건을 만들기 위해 빙판 밖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김연아다. 이런 김연아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자 사치다. 자연인 김연아의 또 다른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그가 선사해준 감동의 순간들을 오래토록 공유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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