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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살 설아의 첫 아시안게임 참가기
- 출처:스포츠경향|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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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떨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지난 6월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스페인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고 가슴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김설아(18·창원봉림고)는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김설아의 첫 ‘국가대표 느낌’은 자주 보던 언니들과 함께 다니는 것 같아 낯설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새로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김설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훌륭하게 치렀다. 10m 공기소총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땄고 50m 소총 3자세 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없었지만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기회가 많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경기를 모두 마친 뒤 만난 김설아는 지난달 22일 대회 첫 출전인 여자 10m 공기소총 본선 때를 먼저 떠올렸다.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라는 중압감이 세계선수권과는 또 달랐다고 했다.
“아침부터 되게 바빴거든요. 긴장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몸에 힘은 안 들어갔어요. 사격장 가는 버스가 늦게 도착해서 바쁘게 사대에 올라 다른 생각할 경황이 없었던 것 같아요.”
김설아는 여자 소총 3자세 단체전에서 다시 한 번 금메달에 도전했다. 하지만 최강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점차 은메달에 머물렀다. 개인전은 결선 진출 실패.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조금은 연습이 부족한 점도 없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게 핑계가 될 수 없어요. 결국 제가 제 관리를 못한거니까요.”
경남 거창 혜성여중 2학년 때 처음으로 잡아본 소총이 자신의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래 선수하려고 사격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학교 선생님이 ‘소년체전에 나가볼래’ 하시기에 ‘하겠다’고 한 게 시작이예요. 소년체전에서 입상하고 난 뒤에 학교 사격부가 생겼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격에 김설아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2011년 제40회 전국소년체전을 시작으로 이번 아시안게임까지 김설아가 크고 작은 대회에서 1등을 한 것만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19번이다. 입상권에 든 것만으로 따지면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내 강초현(32·한화갤러리아) 이후 오랜만에 걸출한 ‘소총 유망주’가 나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설아는 “재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그냥 남들보다 감각이 조금 좋은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김설아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과 같은 ‘고교생’ 사수 김청용(17·흥덕고)이 2관왕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봤다. 또래 학생 입장에서 김청용의 2관왕을 지켜본 김설아의 마음은 어땠을까.
“(김)청용이가 메달을 딴 그 날은 정말 부러웠죠. 근데 그건 걔가 잘 해서 받은거잖아요. 청용이는 실력이 좋아서 2관왕을 했겠지만,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아, 내가 청용이보다 못했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김설아는 오히려 이번 대회를 통해 공기소총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된 점이 큰 수확이라고 했다. 김설아는 대회 때 공기 소총과 일반 소총 종목에 모두 출전하지만, 원래 주종목은 화약을 쓰는 일반 소총이다.
“공기총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조금 늘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동안은 공기총보다 화약총이 더 재미있었거든요.”
김설아는 지금까지 사격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사격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기에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그 순간이 신기하고 재밌기만 하다.
김설아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손사래를 쳤다.
“물론 감사하죠.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전부 다 고마워요. 그런데 아직 제가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의 레벨은 아닌 것 같아요 좀 많이 민망하네요.”
대회는 끝났지만, 앞으로 경찰청장기와 전국체전 준비로 바쁜 김설아의 다음 큰 목표는 당연히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 올림픽이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못 땄지만, 올림픽 각오는 남다르다.
“선수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어요. 이룰 수 있는 것 다 채울 때까지 열심히, 즐겁게 노력할래요. 인천에서 경험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