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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J 베스트 게임 | 마이클 조던의 데뷔전
- 출처:루키|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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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 26일은 시카고 불스 구단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날이다. 바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NBA 선수로서의 공식 데뷔전을 치른 날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불리츠(현 위저즈)를 맞아 그는 아직은 덜 익었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보이며 팀에 시즌 첫 승을 안겼다.
1983-84시즌 27승 55패에 그쳤던 시카고는 그 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조던을 지명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조던은 1984년 LA 올림픽을 비롯해 많은 대회에서 가능성을 인정받던 유망주였다. 물론 전체 1, 2순위 자리는 센터(하킴 올라주원, 샘 보위)에게 내줘야 했지만 3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로드 쏜 단장은 보위보다는 조던을 더 높게 봤으며 ‘갈수록 더 좋아질 선수’로 평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케빈 로워리 감독 역시 조던의 기량을 더 높이 샀다.
그러나 시즌을 앞두고 미디어데이를 개최할 때만 해도 불스와 조던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마침 시카고 컵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기자들의 관심은 조던보다는 야구에 쏠렸다. 하지만 조던의 경기를 바라본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985년 1월 발행한 『HOOP』紙에 따르면 이미 로워리 감독은 트레이닝 캠프 당시부터 조던이 공을 잡고 시작하는 오펜스를 고안했다. 트레이닝 캠프 1주일이 지나면서 점차 미디어의 관심도 높아졌다. 로워리 감독은 언론, 팬들의 지나친 기대가 조던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람들은 그를 줄리어스 어빙에 비교해왔다. 하지만 아직은 옳지 않다.” “내가 봤을 때 어빙보다는 제리 웨스트에 가깝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뉘앙스 아닌가?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데뷔초기 ‘누군가’와 비교 당할 때마다 나왔던 말들이다. 심지어 제리 웨스트마저도 “오랜만에 옛날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선수가 나왔다” 말할 정도였으니 당시 조던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조던은 시카고 지역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사실 동료들의 시기와 견제도 있었다. 훗날 한 선배는 “생각해보라. 루키의 출장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른 베테랑들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을 리가 없었다”라 고백하기도 했다).
첫 상대는 워싱턴
조던의 첫 상대는 워싱턴이었다. 돌이켜보면 워싱턴은 조던과 인연이 대단히 깊은 듯하다. 훗날 그는 워싱턴 위저즈의 경영진에 참가했고 워싱턴 선수로서도 복귀해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의 연속매진기록을 중단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20여년 뒤의 일이다.
NBA 선수로서의 첫 경기서 조던은 다소 급해보였다. 점프슛은 대부분 터프샷이었고 그 결과 16개의 슛 중 11개가 림을 빗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던에게 먼저 볼이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뭔가 다급한 듯 무리하게 돌파하다가 실수를 범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에서 산왕을 상대하던 서태웅의 모습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돌파는 열심히 하지만 더블-팀 함정에 걸리는 장면도 나왔다(조던이 안정감 있는 슛으로 상대를‘꾸준히’제압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공격 리바운드에 적극 가담하는 등 신인다운 활발한 모습도 보여줬다. 덕분에 이날 조던은 6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고 어시스트도 7개나 기록했다. 시카고는 조던 외에도 주득점원 올랜도 울릿지와 2년차 포인트가드 에니스와틀리가 2대2 콤비 플레이를 만들거나 울릿지가 개인기로 득점을 따내면서 경기를 풀어갔다. 빅맨 스티브 존슨의 허슬 플레이도 돋보였다.
그러나 시카고는 경기 내내 워싱턴의 공격 리바운드 가담과 패스 길을 차단하는 수비에 고전했다. 당시 워싱턴은 제프 럴랜드와 릭 마혼 등이 포스트에서 대단히 터프한 모습을 보여줬던 팀이었다. 또 시카고는 수비에서도 2대2 플레이를 자주 놓치면서 점수를 내줬다. 그러나 워싱턴도 잘한 경기는 아니었다. 1983-84시즌, 35승 47패를 기록했던 그들 역시 높은 수준의 팀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3쿼터 들어 불스의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조던도 마찬가지였다. 3쿼터 첫 공격에서 제프 럴랜드에게 블록을 당했던 그는 자신의 다음 공격에서 복수에 성공했다. 매섭게 파고들어 파울을 얻어낸 것. 또 특유의 체공력을 한껏 살린 핑거롤을 선보여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훗날 조던의 데뷔전에 대해 옛 동료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로드 히긴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에는 조던도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금방 딛고 일어나 림으로 돌진했다.” 불스는 109-93으로 이겼다. 조던은 자유투 7개를 얻어내 6개를 성공시키는 등 16점을 보탰다.
조던의 첫 시즌
첫 시즌에 그는 3번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으며 4번의 위닝샷을 터뜨렸다. 1984년 12월 7일 뉴욕 닉스를 상대로는 5초 남기고 중거리슛을 넣으며 승리를 안겼다. 닉스와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조던은 평균 28.2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연히 올-루키 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스타 게임을 도중 선배(굳이 지목하자면 아이재아 토마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조던은 훗날 “내가 너무 어렸다”며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시카고는 38승 44패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상대 밀워키 벅스의 벽을 넘진 못했다. 하지만 스윕 위기에 몰렸던 3차전(4월 24일)에서 종료 22초를 남기고 코너에서 위닝샷을 기록, 경기를 4차전으로 끌고 가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조던의 활약에 힘입어 시카고, 조던과 광고 계약을 맺은 여러 후원사들은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전설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박스 | ‘루키’ 조던을 말하다
“조던은 믿을 수 없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휴스턴과 포틀랜드는 그를 지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거예요. 게다가 그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나간다면 그는 곧 슈퍼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 아닙니다. 그는 이미 슈퍼맨일 지도 몰라요.”- 가드 덕 미니필드
“25년 전의 어느 한 게임일 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하지만 한 젊은 친구가 리그에서 자리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납니다.” - 릭 마혼(조던의 데뷔전 당시 상대팀 빅맨)
“저 정도로 잘 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마 연습 때의 그를 봐야 할 것입니다.”-마이크 티벌트(당시 불스 스카우트 담당)
“여기에 있는 사람 전부 조던이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해서 온 거라니까요.”- 케빈 로워리 (당시 불스 감독), 트레이닝 캠프 당시 많은 구경꾼들을 가리키며.
“우리 모두 조던이 좋은 선수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어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딘 스미스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웠고 올림픽에서는 바비 나이트 밑에서 뛰면서 패싱 게임 오펜스를 익혔습니다.
하지만 트레이닝 캠프를 치르면서 우리는 조던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슛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바로 볼을 다루는 재주였습니다. 트레이닝 캠프를 치르면서 우리는 조던이 특별한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첫 날부터 수비를 휘저었죠. 게다가 경쟁심도 뛰어나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 케빈 로워리 감독
“마치 마이클 잭슨 빅토리 투어를 다니는 것 같아요. 경찰의 에스코트가 끊이지 않죠. 그(조던)는 마이클이고, 우리(나머지 불스 선수들)는 잭슨입니다.” - 올랜도 울릿지(조던의 옛 동료)